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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에서 영웅으로, 장이머우 30년이 중국 30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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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 01면

8일 밤 3시간30분 동안 펼쳐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의 마지막 순간, 최종 성화봉송 주자 리닝(李寧·체조선수 출신)은 와이어에 매달려 새처럼 밤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곤 올림픽 주경기장인 냐오차오(鳥巢·새 둥지)의 벽을 마치 허공을 달리듯 한 바퀴 돌았다. 앞서 장이머우(張藝謀·57·사진) 감독이 총연출을 맡은 예술공연에선 둔황 벽화에서 따온 고대 선녀, 개막식 주제가를 부른 9살 소녀도 와이어의 힘을 빌려 우아하게 하늘을 날았다. 그 뒤 등장한 거대한 지구본 위에서는 수십 명의 청년이 와이어에 의지해 중력을 벗어난 360도 무용을 보여줬다. 무협 블록버스터로 중국 영화계 간판이 된 장이머우다운 발상이었다.

이날 예술공연은 그가 이제껏 만든 블록버스터 중에서 으뜸가는 규모였다. 인건비를 뺀 예산만 1000억원에 이른다. 장이머우가 최근작 ‘황후화’를 만드는 데 중국 영화사상 최대 제작비(450억원)를 썼다고 하지만 그 두 배를 넘는 액수다. 이 영화에서 장은 1000여 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했다. 그러나 이날 개막식에선 첫 장면부터 2008명의 타악기 연주자를 동원해 카운트다운 동작을 흡사 브라운관의 화소처럼 정교하게 조직해 보여줬다. 자신의 영화에서 즐겨 쓰던 빨강·노랑·파랑 같은 강렬한 원색에 더해 개막식에서는 수묵화의 흑백이나 미래적 형광 컬러까지 사용해 한층 원숙한 경지를 과시했다. 9일 베이징 기자회견에서 장이머우는 “영화 한 편을 만드는 것보다 100배는 힘들었다”고 말했다.

사실 중국에서 장이머우만큼 집단공연예술 감각을 갖춘 인물도 찾기 힘들다. 장은 첫 무협액션 대작 ‘영웅’(2002년)으로 중국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수입을 올린 데 이어 ‘황후화’(2006년)로 신기록을 다시 썼다. 국보급 영화감독의 역량을 그는 예술공연 무대에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하지만 장이 지나치게 영웅주의를 부각시켰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 대중문화를 전공한 임대근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마지막 성화 주자’인 리닝을 초인적 영웅으로 묘사하고 한·당(漢·唐)의 장건·정화 같은 고대 영웅을 부각시켰는데 이는 중화주의와 전체주의에 빠진 장이머우의 사고 방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의 최근 영화에서 쿠데타·내란 장면이 몇 차례 나오지만 한 번도 정권을 뒤엎지 못하는 게 이를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과거의 장이머우를 떠올리면 엄청난 변화다.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 장교 출신의 아버지를 둔 그는 문화혁명 때 큰 시련을 겪었다. 학교 대신 농촌과 방직공장 등에서 8년간 일하며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문화혁명이 끝나고 78년 베이징영화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동기생 장이머우·천카이거 등은 졸업 이후 교조적인 사회주의 영화를 배격한 채 농촌을 배경으로 사회 모순과 민중의 고단한 삶을 묘사한 영화들을 만들었다. 천의 데뷔작이자 장이 촬영감독을 맡은 ‘황토지’는 신호탄이었다. 장의 첫 연출작 ‘붉은 수수밭’은 양조장 주인에게 팔려가듯 결혼한 여주인공을 통해 봉건적 억압과 일제 침략 시대를 헤쳐가는 민중의 원초적 생명력을 표현했다. 88년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돼 최고영예인 황금곰상을 받았다. 이들의 영화는 ‘제5세대’라 불리며 새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붉은 수수밭’ ‘홍등’의 궁리는 연인 관계를 겸한 장이머우의 영화에서 단골 주연을 맡으며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했다.

‘붉은 수수밭’ ‘홍등’의 붉은색, ‘국두’(90년)의 파란색, ‘연인’(2004년)의 녹색 등 강렬한 색채 묘사는 장이머우의 또 다른 트레이드 마크였다. 이런 감각은 ‘영웅’에서 인물·상황을 각기 다른 원색으로 상징하는 절묘한 기법으로 이어졌다. 최근작 ‘황후화’에선 황제의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황금색을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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