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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폴 러셀 지음 "The Gay100"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1위 소크라테스,2위 사포,3위 오스카 와일드….
최근 번역.출간된 『The Gay 100』(사회평론刊)에 소개된 서구 동성애자 또는 양성애자(兩性愛者)들의 순위다.선정기준은 오늘날의 게이와 레즈비언들의 생활에 미친 영향력의 정도.
미국 바사르대학에 재직중인 폴 러셀이 지은 이 책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양역사에서 동성애에 관한 담론의 근거를제공한 인물 1백명을 뽑아 순위를 매기고 있다.작가.사상가.예술가.음악가.군인.정치가.스포츠맨 등 출신과 신 분 다양하다.
위대한 지성 또는 사상가로 알려진 사람들도 다수 포함돼 호기심과 놀라움을 불러일으킨다.
영예(?)의 1위는 세계 4대 성인의 한명으로 꼽히는 소크라테스.누구보다도 호소력있게 동성애에 도덕적 권위를 부여했다.
저자는 플라톤의 저작 『향연』등에서 소크라테스가 연상의 남성이 아름다운 소년에게 느끼는 에로틱한 정열,이른바 플라토닉 러브를 더욱 신성한 차원으로 이끌었다고 해석한다.동성애의 근본적철학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16위에 오른 카톨릭의 대부 아우구스티누스는 반대의 경우다.
일찍이 육체적 쾌락에 탐닉했던 그는 나중에 부부의 성행위까지 철저하게 죄악으로 몰고간다.수세기에 걸쳐 동성애자들에게 가해진억압과 박해의 기틀을 제공한 셈.
화가이자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는 17위에 올랐다.걸작품 『다비드』에서 남자의 육체를 영웅적으로 형상화,게이는 물론 일반인들의 상상력을 무한하게 자극했다.
각각 32,35위를 차지한 프랑스 사상가 미셸 푸코와 미국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성을 둘러싼 정상.비정상의 문제는 역사와 문화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론을 전개해 일반인의 고정관념을 기세 좋게 허물었다.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와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은 남성의편견에 가려진 여성의 능력을 발휘해 13위와 54위를 기록했다.『여자는 글을 쓸 수 없다』는 가부장제에 맞선 울프는 모더니즘 소설의 새 지평을 개척했고,세계 최초의 간호 학교를 설립한나이팅게일은 레즈비언도「홀로서기」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에이즈로 사망한 영화배우 록 허드슨(63위)과 독극물을마시고 자살한 인공지능의 아버지 앨런 튜링(83위)은 동성애자들의 불행한 현실을 대변한다.허드슨은 평생 자신의 동성애 사실을 비밀에 부쳤으며 튜링은 경직된 사회에서 벼랑 끝에 몰린 게이의 비극을 상징한다.
반면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흔들림 없이 자기의 길을 지킨 영화감독 데렉 자만(82위)은 최첨단의 동성애상을 구현한다.영화와 노래에서 동성애적 스타일로 경제적 이익을 얻은 마돈나(99위)도 달라진 사회상을 보여준다.
저자는 『동성애는 어떤 시대,문화에서도 존재했기에 이를 병적또는 일탈적 행동으로 보는 시각의 교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최근 국내에도 대학캠퍼스.예술계를 중심으로 동성애 옹호론이 적극적으로 개진되고 있다.
『The Gay 100』은 동성애를 온당하게 평가하는 1차자료가 될 법하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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