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는 이미 7월 중 전년보다 5.9%나 올랐다. 이것이 8~9월엔 더 가파르게 오를 수 있다는 게 한은의 전망이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높은 오름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 달 새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내림세를 보이곤 있지만 국내 물가에 반영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앞으로도 몇 달간 상반기에 나타난 유가 급등의 영향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8~9월엔 국내 요인으로 물가가 불안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9월엔 평소에도 물가가 반짝 오르는 추석이 끼여 있다. 풍수해에 따른 농산물 가격 상승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인플레 기대심리도 큰 문제다. 7월 중 물가가 오른 품목이 늘어난 데다 개인서비스 가격의 상승폭이 커졌다. 앞으로 물가가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한 개인사업자나 기업이 값을 올릴 수 있을 때 미리 올린 영향이 컸다. 원가 상승과 직접 관계가 없는 ‘편승 인상’이 나타난 것은 인플레 기대심리가 확산된 탓이다. 물가에 추가적으로 불을 지필 만한 ‘인화물질’이 널려 있다는 얘기다.
한은은 이런 상태를 그대로 두다가는 임금이 오르고, 이것이 다시 물가 상승을 부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런 악순환에 빠지기 전에 금리 인상을 통해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문제는 금리 인상의 후폭풍이다. 빚을 안고 있는 기업과 가계의 부담이 당장 커진다. 특히 한계선상에 있는 영세·중소기업이나 서민층이 어려워진다. 이게 심해지면 부실 대출이 늘어나 금융사들에도 연쇄적으로 부담이 돌아갈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중소기업 연체율은 2004년 이후 줄곧 하락하다가 올 6월 말 1.14%로 다시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이 총재는 “금융 불안으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간 소비의 부진도 이어질 전망이다. 올 6월 소비재 판매액은 지난해에 비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5월과 비교하면 4.3%나 감소했다. 금리 인상은 대출을 쓰고 있는 가계의 이자 부담을 늘려 소비 여력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 총재는 금리 인상을 “국민에게 좀 더 아끼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그러나 금리의 추가 인상 가능성에 대해선 원론적인 언급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경기 위축을 이유로 연내 추가 인상 가능성이 작은 것으로 보고 있다. 임찬익 한화증권 채권본부장은 “올해 중 추가 인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금리 인상에 반대하는 입장이므로 한은이 연내 또 한 차례 올리기에는 부담이 크다.
한편 지난달 13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올렸던 유럽중앙은행(ECB)은 7일 금리를 현행 4.25%로 유지키로 결정했다. 이번 금리 동결은 물가 상승과 성장률 하락이라는 상반된 금리조정 요인이 혼재함에 따라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통화당국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ECB가 당분간 물가상승 압력에도 불구하고 경기 악화를 막기 위해 더 이상 금리인상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남윤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