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알파벳에 빼앗긴 글로벌 문화 패권 한자 앞세워 도전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베이징 올림픽의 경기종목 픽토그램(Pictogram)은 한자의 여러 서체 중 하나인 전서체(篆書體)를 기반으로 도안된 것이다. ‘사람 인(人)’과 ‘큰 대(大)’가 어렵지 않게 눈에 들어오며, ‘견줄 비(比)’라든가 ‘물 수(水)’ 등도 숨은 그림으로 뒤져 낼 수 있다. 장애인 올림픽 엠블럼은 ‘갈 지(之)’를 죽간체로 그린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의 기본 도안은 거개가 한자를 매개로 상상력을 동원한 결과물인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의 엠블럼 도안 설계가 이뤄지는 동안 중국에서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었다. ‘대외한어교학사업(중국어·한자의 대외 보급사업) 2003~2007’이 그것이다. ‘한어 교(橋) 공정’(중국어 교량 프로젝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기획의 일환으로 한국에서도 ‘공자 아카데미’(孔子學院)가 몇몇 대학에 자리를 잡았다.

서예가 왕쉬위안(王緖元)의 전시회 작품 중 탁구(乒乓球)하는 두 사람을 한자를 응용해 나타낸 그림.

특히 중국과 미국은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한 중국어 교육법, 중국어 전자사전 및 언어자원 데이터베이스, 다중매체 활용 교수법, 중국어의 문화 배경지식 데이터베이스, 번역기기 등을 공동 개발하는 데 합의했다. 이런 움직임은 2005년 후진타오 주석의 특별 지시에 의해 더욱 힘이 실렸다. 중국의 문화대국 프로젝트+한자 및 중국어의 세계화+소프트파워(軟實力) 강조+중국의 대외 화평 전략이 맞물린 거대한 문화 공세가 예고된다.

전 세계 문자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합리적인 문자로 한글을 꼽은 영국의 다큐멘터리 작가 존 맨은 19세기까지 전 세계 정보량의 90%를 한자가 점유하고 있었으나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그 90%를 알파벳 문자가 점하게 됐다고 적고 있다.

중국이 올림픽을 통해 한자를 부각시키는 이유가 혹시 영어에 빼앗긴 글로벌 패권을 되찾기 위한 도전장은 아닌가.

베이징 올림픽 엠블럼은 서방세계로 한자의 진군을 알리는 거대한 신호탄 혹은 예광탄이다. 이는 비를 내리게 하는 기상폭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가공할 폭발력이 내장된 문화폭탄이다. 세계 인구의 20%를 점하는 중국에 더해 홍콩·대만·싱가포르 등 중화 경제권, 한자 문화권을 이루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화교와 한국·일본의 교민들에게 한자가 낯익은 문자라면 그 한자 열풍이 다시 타오르는 날이 마냥 멀었다고 할 것인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해 ‘천하대일통’을 이룬 진시황은 당시 복잡다기한 한자를 소전체(小篆體), 곧 베이징 올림픽 픽토그램을 도안한 서체로 통일시킨 군주였다. 진시황의 이른바 ‘서동문’(書同文·한자 통일) 정책은 중국 통일의 기초를 닦은 주춧돌이었다. 재미 사학자 황런위(黃仁宇)는 한자야말로 중국이라는 문화대국을 낳은 통합력의 기반이라고 강조한다. ‘서동문’이라는 기본 방략이 없었다면 중국은 유럽처럼 여러 나라로 분열돼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의 한자 픽토그램 작업은 21세기 한자 및 글로벌 언어 환경, 나아가 허다한 기호체계의 행방을 가늠할 수 있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그림(Picto)과 문자(Gram)의 결합이다. 이는 한자의 발생론적 원점이 상형문자라는 점, 곧 그림과 문자가 둘이 아니라 한 뿌리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이로부터 시각매체와의 결합 가능성이 열린다. 곧 알파벳처럼 소리 문자라는 테두리에 스스로를 가둬 두는 것이 아니라 필경은 시각화된 만화·애니메이션·플래시 등으로 가닥을 잡아갈 것이다.

네티즌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자리 잡은 ‘이모티콘’이야말로 확실한 물증이다. 본디 아무 의미가 없는 알파벳을 문자의 생김새로부터 의미를 추출해 의사소통의 신기원을 창출한 이모티콘이야말로 소리 문자의 태생적 한계를 깨부순 쾌거다. 알파벳의 문자적 한계를 혁파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 전환이 거기 담겨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언어 학습의 중대한 변환이 가로지른다. 배우고 익힌다는 종래의 학습 개념이 해체의 운명을 걷게 되면서 새로운 ‘놀이 개념’이 틈입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한자를 배우는 아이들에게 강요된 암기 학습법은 가위 고문이 아니던가. 언어 학습의 패러다임은 놀이로 바뀐다. 비트겐슈타인이 지적했듯이,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마저 놀이로 조직될 수 있다. 어려운 한자를 매직과 로직의 결합으로 꾸민 새로운 학습법이야말로 21세기 최대의 교육 콘텐트가 되지 않겠는가.

유중하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