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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든 옳지 않든 세상은 바뀌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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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자민련 김종필(JP.77) 총재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19일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金총재는 마포당사에서 총선 당선자들과 만나 "(총선 결과는) 국민이 선택한 것이므로 조건 없이 수용해야 한다"며 "오늘로서 총재직을 그만두고 정계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 40여년간 격동의 한국 정치를 풍미해온 '3金정치 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됐다. JP는 이날 "노병은 죽지 않고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라며 "지난 43년간 정계에 몸을 담아왔고 이제 완전히 연소되어 재가 됐다. 일찌감치 떠날 수도 있었지만 무언가 세워놓고 떠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세상은 옳든 옳지 않든 바뀌었다. 이 나라에 불안요인이 있는데 시간과 더불어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겠지만…패장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말을 아꼈다.

JP는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도한 5.16 쿠데타에 가담,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당시 그의 나이 35세였다.

JP는 중앙정보부를 창설, 초대 부장을 맡았고 63년 공화당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71년엔 국무총리 자리에 오르며 '권력의 2인자'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화려한 이력 뒤의 정치역정은 파란만장했다. 권력 내부의 견제로 상당기간 '자의 반 타의 반' 외국에 나가 있어야 했고, 80년 신군부 등장으로 정치규제에 묶이기도 했다.

87년 해금되면서 그의 정치인생은 제2의 황금기를 맞는 듯했다. 3金정치의 파트너였던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과의 경쟁과 협력관계가 본격화된 것도 이때다.

JP는 '1盧3金'이 맞붙은 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민주공화당을 창당, 대권에 도전하지만 고배를 마신다. 3당 합당으로 집권여당인 민자당에 합류해 대표를 지냈고 92년 대선 때는 민자당 후보로 나섰던 YS를 밀지만 2년여 만에 결별한다. 이후 95년 충청을 기반으로 자민련을 창당, 재기에 성공한다. 97년 대선 때는 DJ를 도와 이른바 'DJP 공동정권'탄생신화를 일궜고 생애 두번째 총리를 맡으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시련은 다시 찾아왔다. 2000년 총선에서 17석을 얻는 데 그쳐 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고, 2002년 대선으로 정국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당구도로 짜이면서 입지가 좁아졌다.

그는 이번 4.15총선에서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 헌정 사상 첫 10선 의원의 기록을 세우겠다는 집념과 의지를 불태웠지만 역부족이었다. 자민련은 지역구에서 4석을 얻는 데 그쳤고, 10선 의원의 꿈도 물거품이 됐다. '3金시대'의 '마지막 金'으로 남았던 JP. 9선의 노(老)정객은 이렇게 쓸쓸히 정치생애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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