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세계의 유사 신화" 번역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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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눈에 보이는 현상 속에 내포된 진리에 대한 한차원 높은 통찰.』(독일문호 토마스 만) 『끝없는 우주의 에너지가 인류의 문화로 발현되는 은밀한 통로.』(미국 신화연구가 조지프 캠벨)신화를 바라보는 두가지 해석이다.최근들어 서구는 물론 한국 지성계에 신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합리적 이성에 기초를 둔 과학문명의 한계가 속속 드러나면서 인류의 지혜가 농축된 신화를 새롭게 해석,위기에 빠진 현대문명을 반성하고 삶의 본질적 측면을탐구하려는 시도에서다.
최근 번역출간된 『세계의 유사 신화』(세종서적刊)는 이같은 시대적 조류를 요령있게 반영하고 있다.지은이는 현재 미국 워싱턴DC 아메리칸대학에서 부교수로 재직중인 J F 비얼레인.신학.실존주의.라틴 아메리카 예술과 함께 그리스 고어 .헤브라이어등 여러나라의 언어를 연구해온 신화전문가다.
서구신화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다양한 신화서적과는 달리 『…유사 신화』는 세계 각국의 민족사에 등장하는 신화를 비교문화적시각에서 공평하게 분석한다는 미덕이 돋보인다.
이른바 인류의 상상이 엮어낸 「허구의 세계」를 민족별로 간략하나마 꼼꼼하게 훑으며 신화의 공간에서 인류를 하나의 지구인으로 묶고있다.
저자가 강조하듯 신화는 장구한 세월을 살아남은 인류의 기록이자 왜곡없는 윤색이며,강요하지 않는 종교고,허세부리지 않는 문학이다. 말하자면 신화는 심심풀이로 꾸며낸 픽션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는 태고의 현실에 대한 인간의 진술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널리 알려진 신화의 주인공들을 두루 만나게 된다.
그리스.로마는 물론 우리에게 낯선 인도.아프리카.노르웨이.중국,그리고 아메리카.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통과 문화를배경으로 탄생한 신(神)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놀라운 것은 고대 각국 신화의 유사성.창조.홍수.사랑.도덕.
죽음.종말 등의 소주제 아래 인류 공통 유산으로서 인문(人文)의 시원을 찾고 있다.구체적인 내용은 다소 다르더라도 현세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인간의 꿈을 대 변한다는 점에서는 참으로 동일하다.
예컨대 성서에서 자주 인용되는 노아의 홍수는 다른 문화권에서빈번하게 등장하는 단골소재다.인도에서는 물고기 한마리가 자기를돌봐준 대가로 한 남자를 대홍수에서 구출하는가 하면 바빌로니아에선 노아의 비둘기처럼 까마귀가 홍수가 끝남을 알려준다.
선교사들이 발을 들여놓기 훨씬 이전부터 하와이에도 비슷한 신화가 널리 퍼졌었고 중남미 아즈테크들 사이에도 사악한 인간에 진노한 신들이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키기 전에 착한 부부에게 미리 재앙을 알려주는 이야기도 나온다.
또한 독일의 지그프리트,그리스의 테세우스 등 세계 여러 곳의영웅신화도 유사한 서사구조를 노출하고 있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19세기 후반에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그렇듯 「허구」로 치부됐던 신화가 정보화 사회가 만개될 21세기 직전에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저자는 인간의 소외와허무를 유발한 산업문명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 서구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동양종교에 대한 관심,과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인간의 영성(靈性)을 강조하는 뉴에이지운동도 같은 시각에서 해석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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