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론>'記號'민주주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며칠전에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총선 합동유세장 구경을 갔었다.60년대 유학생으로 모국을 떠나던 때와 비교해 어떤 선거 풍토의 변화가 눈에 띄는지 비교 취재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었다.
우선 후보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졌다.그 자체가 유권자들의 수준향상,즉 대한민국 국민의 문화수준 진전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신인들이 미디어 노출이 안돼 안타까워 하는 것도 눈에 띈다.
그것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양상이었다.민주주의를 하자면 언론의역할이 이 때문에 더욱 커질 것이다.앞으로는 정치인들의 미디어를 겨냥한 개인 PR기술도 고도화될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정치인들의 좋은 아이디어나 멋진 정견발표 연설도 신문.방송이 제쳐놓으면 유권자들에게 전달될 수 없다.정치인을 생성시키는데 미디어를 다루는 홍보전문가들의 영향력이 커지면 기자들의 직업윤리도 더욱 강조돼야 할 것이다.
추운 날씨에 많은 사람들이 옥외로 모인다는 것도 퍽 인상적이었다.또 연사들이 마이크와 청중 앞에 서자 갑자기 자연스런 목소리가 웅변조로 변하는 것도 신기로웠다.마치 고전 영화를 보는것같기도 하고 종교의식 같은 습관성이 된 것 아 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정견발표가 텔레비전이나 신문지상을 통해 1차적으로차분하게 논의될 시절이 언제라도 와야 할 것이다.
나의 첫 실망은 후보들이 소위 기호라는 것,아라비아 숫자로 소개된 것이었다.많은 경합자끼리 혼동이 안되도록 하자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억력이 약하리라는가정아래 실시해본 것이었다.투표율을 높이고 유권 자들의 선택방법을 도와준다는 가부장적인 전제하에 이 제도를 만든지 반세기 지난 오늘에도 작대기가 숫자로 바뀌었을 뿐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그러나 이 기호식별 방법은 창피스런 구습이다.또 21세기선진국으로서는 유권자 모독으로 느껴진다.우리나라 평균 투표자는사람이름도 못읽는 수준일까.10여명 명단에서 인물을 고를 수 없는 저능 IQ 소지자는 극소수가 아닐까.번호를 단 투표용지를놓고 과연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할까.언제까지 유치원생들처럼 번호를 달고 정치인을 지망해야 하나.
원래 작대기 번호란 고무신.막걸리 선거시절의 궁여지책이었으며민주주의 초등수준의 변칙이었다.그것이 비록 숫자로 바뀌었다 해도 기호를 이용한 90%의 투표율보다 기호따위 없는 60%가 더욱 선진 민주주의 선거문화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이것은 엘리티즘의 주장이 아니라 한국인의 수준에 대한 나의 평가다.최소한 내가 본 합동유세장의 모습은 그랬다.
두번째 놀란 것은 수십년간의 3金 보스정치의 연속상연이었다.
그만큼 우리국민의 구질서에 대한 수용태도가 크다고 볼 수 있다.중앙당에서 전국구 타지역후보를 공천한다는 제도는 필연적으로 매관매직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영어로 말을 만 들어 보자면Appointed Congressman-즉 「임명된 선량」이란우수꽝스런 표현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이것은 오래전에 유정회 국회의원을 외국언론이 놀려대던 표현이었다.
후보는 그 지역,그 동네,그곳의 당원들이 선출해야 뜻이 있다.모든 선거원칙이 그런 것이다.못난 사람이라도 자기 지역에서 자기네가 뽑는다는 것이 소위 정치는 로컬이라는 원칙이다.유권자는 틀린 선택도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 선거의 기본논리다.선거법이란 새금법 조세율처럼 계속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다음 총선에는 오늘의 모습은 또 달라질 것이다.나는 소위 사전선거운운 논의 자체가 없어지는 날을 보고 싶다. 그런 훗날 기호 1번,2번,3번식의 숫자기호 민주주의는 고함지르지 않는 실명제 선거문화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 아닌가.그런 날들은 얼마를 더 기다려야 올 것인가.
안재훈 본사전문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