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책읽기] 화려한 패션타운 만든 ‘긴자의 장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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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銀座のプロは世界一(긴자의 프로는 세계 최고)
스도 야스타카 지음
니혼게이자이신문 출판사(2008년 3월)
280쪽,1700엔

 1603년 에도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긴자(銀座) 2초메에 은화를 주조·발행하는 관아를 설치했다. 1800년 은화 발행관아는 다른 곳으로 이전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을 긴마치(銀町)라고 불렀다. 메이지(明治)유신 이듬해인 1869년 정식으로 ‘긴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긴자가 화려한 상업도시로 발전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당시 쓰키지(築地)의 외국인 거주지역에서 가까운 긴자에는 외국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생겨났다. 또 일본 최초의 철도가 신바시(新橋)와 긴자로 이어져, 당시 터미널이 있던 긴자는 사람들로 북적이며 화려함과 풍요의 거리로 성장했다.

1872년 대화재로 긴자 거리의 70%가 소실되자 당시 부지사인 유리 기미마사(由利公正)는 긴자를 화려하게 바꿔놓았다. 런던 거리를 본 딴 양식 벽돌건물을 지었다. 1900년대에는 패션의 거리로 거듭났다. 백화점, 음식점, 카페 등에 도쿄의 모던걸들이 찾아 들었다. 관동대지진과 2차 대전의 도쿄대공습 등을 거치면서도 긴자는 기적적으로 다시 일어섰다. 긴자의 힘은 그곳의 상인들에게서 나왔다.

이 책은 100년 넘게 긴자에서 가게를 이어온 프로들의 이야기다. 1955년 도쿄에서 처음 발간된 월간 지역정보잡지인 ‘긴자백점(銀座百店)’에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연재된 ‘프로를 찾아서’ 코너를 단행본으로 엮었다. 저자는 긴자에서 활약하는 각 분야 프로들의 삶과 직업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먹거리, 음료, 미용, 공예,의복·장신구, 취미용품 6개 장에서 총 31명의 장인을 소개한다. 60년 넘게 긴자에서 분메이도(文明堂) 카스테라와 바움쿠헨을 손수 굽는 파티셰 하마모토 테루야스(浜本照靖)와 2~3년씩 갈고 닦은 칼로 손님들의 얼굴의 솜털을 면도하는 미용사 소네카와 고스케, 사장부터 직원까지 헬스클럽에서 몸매관리를 하며 자신들이 만든 양복의 맵시를 보여주는 다카하시(高橋)양복점 등등. 프로들의 고행과 일에 대한 자부심, 긴자 유명 가게들의 과거와 오늘을 이 한 권으로 파악할 수 있다.

1952년 문을 열고 돌솥비빔밥 등 다양한 창작요리를 개발한 한식당 ’청향원’의 장정자씨의 사연도 관심을 끈다. 혁명가였던 남편을 따라 전후 일본에 정착한 장씨는 1965년 도쿄올림픽이 끝난 뒤 비빔밥을 뜨겁게 달군 돌솥에 담아내는 돌솥비빔밥을 고안해냈다. 잘 식지도 않고 고소한 누룽지까지 만들어먹을 수 있는 돌솥비빔밥은 일본전역에 확산된 뒤 한국으로 역수출됐다.

가장 싼 양복이 300만원이라는 다카하시 양복점의 대표 다카하시 준(高橋純)은 “직원들이 만들어온 양복이 10년이 지나도 입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합격이냐 불합격이냐를 가린다”고 말한다. 디자인에서 재단, 최종 마무리까지 양복 한 벌을 제작하는 시간은 약 5주. 한 직원이 판매에서 제작까지 모든 공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최종 검사는 다카하시 대표의 몫이다. 아무리 번듯하게 완성된 양복이라도 고객 체형에 맞지 않거나 유행을 타는 디자인,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담당직원에게 돌려보낸다. “긴자의 프로가 일본 최고는 당연지사, 세계최고”라는 저자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스도 야스타카(須藤靖貴)

1964년 도쿄 출생. 도쿄 고마자와(駒澤)대 문학부 졸업. 스포츠·건강 잡지 편집자를 거쳐 소설가로 데뷔했다. 99년 『오레와 도샤부리(나는 도샤부리)』로 제5회 소설 신초(新潮) 장편신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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