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힐러리칼럼>性에 대한 고정관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양성(兩性)간에 「사격중지」를 외칠 때가 왔다.그렇다고 그동안 모든 남녀가 전면전을 벌여왔다는 의미는 아니다.꽤 잘 지내오던 우리를 동지가 아닌 적으로 만든 것은 몇몇 고정관념들이었다. 유능한 커리어우먼을 「아내와 엄마로서 점수가 떨어진다」며헐뜯는가 하면 집에만 있는 주부들에게는 「재능이 아깝다」고 혀를 찬다.식사준비.세탁등 가사를 분담하는 「아내보다 돈 못 버는 남편」에 대한 험담들….
여성들에게는 그들의 일을 존중해주는 타인의 시선이 필요하며 남편들에게는 가장(家長)의 의무 수행에 대한 칭찬과 북돋움이 있어야 한다.
많은 아내들이 남편이 육아를 더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데여기에는 남편을 비난하기 위한 구실을 찾으려는 본심이 숨어있는것같다. 나 역시 그랬다.남편이 딸 첼시아에게 처음으로 음식을먹이던 날 나는 매처럼 날카롭게 그를 지켜봤었다.세월이 지난 지금 딸애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목욕을 시키며 침대 머리맡에서기꺼이 동화를 읽어줬던 남편을 가진 것을 나는 행운으 로 여기고 있다.
50년대 사람들 치고는 상당히 깬 부모 밑에서 자란 것 역시내 행운이다.아빠는 돈을 버셨고 엄마는 전업주부로 우리 형제들을 돌보셨지만 아빠는 기꺼이 엄마를 도우셨다.매일의 식사를 엄마가 책임지는 대신 토요일 저녁의 특제햄버거와 수프는 언제나 아빠 솜씨였다.
그후 한세대가 지났지만 아이 키우기는 뭐니뭐니해도 여성의 일이라는 시각은 여전하다.하지만 이런 사회적 인식은 여성 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여성적」혹은 「남성적」이라는 말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 은 훌륭한 부모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될 뿐이다.
자녀와 남편에게 헌신적인 여성은 「여성적」이고 자신의 일에 더 관심이 많은 여성은 「남성적」인가.우는 아이를 껴안아주는 아빠는 「여성적」이고 아이들과 운동을 하는 아빠는 「남성적」이란 말인가.
우리가 좀더 단단한 가정과 사회.국가를 원한다면 남녀 모두 집안과 밖에서 하는 일에 조화를 이뤄야 한다.누가 가계를 이끌어가는가에 상관없이 가족을 위해 합당한 것이라면 어떤 결정이건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내 친구 한 사람은 마흔살에 결혼해 마흔다섯살에 아이를 낳았다.그의 남편은 집안에서 아이키우기 등 가사를 처리하고 그는 밤늦게까지 회사일에 열중한다.또다른 내 친구는 그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모든 사람이 가족과 사회를 위해 특출한 능력과 기술을 십분 발휘하도록 만드는 것,이것이야말로 「여성의 권리」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