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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권 없어 단속불응땐 속수무책-중앙선관위 속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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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앙선관위는 요즘 시국강연회와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정확히말하면 선관위의 중단경고를 무시한채 시국강연회를 강행하는 정당들과의 전쟁이다.
임좌순(任左淳)선거관리실장은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통과된 선거법을 공당이 무시하니 공명선거가 요원하다』고 말한다.
선관위는 불.탈법선거운동에 대한 단속이 제대로 안된다는 지적에 대해 이번 시국강연회를 대표사례로 꼽는다.『법이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풍토가 최대장벽(金弧烈홍보관리관)』이라는 하소연이다.새 선거법을 제정하고서도 각 정당과 후 보들은 과거관행대로의 선거운동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일부는 『법이 까다롭고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위반을 아예 작정하는 후보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에 비해 선관위가 대처하는데는 한계가 많다.17일 현재 중앙선관위가 밝힌 전국의 선거관리 및 단속요원은 5만3천여명 정도.이번 총선 출마예정자를 1천3백명으로 꼽을 경우 후보당 40명꼴이다.선관위의 엄살이 이해가 안갈 만큼 많은 수치다.
그러나 선관위 얘기는 다르다.박기수(朴基洙)선거관리관은 『10만경찰도 작심한 도둑은 못잡는 법』이라고 반박한다.법을 지키자는 풍토라면 모를까 위반을 작심한 사람들에겐 단속인원 숫자는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뿐만이 아니다.단속요원의 신분보장이 안되는 점도 한계로 꼽는다.말이 단속요원이지 단속의 권한은 극히 미약하다고 주장한다.
우선 단속요원들의 경우 수사권이 없다.검찰에 사건을 이첩하는 것 말고 선관위가 취할 수 있는 강력한 제재라고 해야 행정처분정도다.심지어 현장 단속을 하다보면 『당신이 무슨 권리로』라며대드는 후보도 적지 않다고 한다.지난달말 서울 모지역구에서 현역의원이 사랑방 의정보고회를 한다는 소리에 출동한 단속요원들은문턱도 넘지 못했다.『위반한 일 이 없는데 왜 난리냐』며 가택침입죄까지 운운하는 바람에 한바탕 승강이를 벌였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선관위 직원들간에는 『우리는 선거관리요원이지 수사요원이 아니다』는 자조도 나온다고 한다.
게다가 까다롭고 복잡한 통합선거법은 단속요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장애물이다.정식 선관위 직원이야 그래도 덜하지만 5천여명에달하는 자원봉사자들 경우 미리 교육을 받더라도 현장에서 헷갈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단속의 어려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자원봉사자제도만 해도아직 인식이 제대로 안돼 실비보상이 안된다는 점에 도중하차하는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나마 선거기간 전까지는 단속작업이 그래도 활기를 띤다고 한다.선거기간이 시작되면 후보등록업무와 투표용지 인쇄등 과외 아닌 「본업」으로 선관위는 정신이 없다고 하소연이다.
이래서 선관위 관계자들은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단속보다 관리업무에 무게중심이 쏠릴 수 있는 선거풍토』를 자꾸 들먹인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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