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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Hot TV] 박지윤 나의 하늘색 꿈은 '진짜 연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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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인형은 남녀 불문하고 묘한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다. 여자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 바비인형에 예쁜 옷을 갈아 입히며 마치 자신이 완벽한 팔등신 미인이라도 된 듯 대리만족을 느꼈다.

그러나 그건 어쩌면 현실에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신체적 한계를 깨달아가는, 일종의 좌절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는 지도 모른다. 남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누이의, 또는 또래 여자친구의 손에서 떠날 줄 몰랐던 바비인형은 선망의 미인인 동시에 어차피 내 여자일 수 없는 '신포도'같은 하찮은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바비인형은 늘 '미인의 대명사'면서도 별로 존중받지는 못한다. '바비 인형 같다'는 말은 미인이라는 찬사보다는 은근슬쩍 낮춰부르는 색깔이 더 강하다.

이목구비가 또렷한 조막만한 얼굴에 바비인형처럼 군살 하나 없이 늘씬한 연기자이자 가수 박지윤(22)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혹시 이렇지 않을까. 열다섯 나이에 '하늘색 꿈'(1집 앨범 타이틀)같은 청순함을 내세워 주목받은 후 '성인식'(4집)을 거쳐 '할 줄 알어'(6집)라며 우리에게 도발을 일삼던 이 재능있는 가수가 이제 당분간 연기에 전념하겠다지만, 그를 바라보는 눈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가수가 연기하는 게 자연스러운 세상인 데다, 박지윤은 이미 1994년 아역 탤런트로 데뷔해 99년 미니시리즈 '고스트'로 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사람들은 왠지 그를 그냥 예쁜 연예인으로만 자꾸 보려하니 말이다.

연예계에 막 데뷔한 신인이라면 모를까 '진짜'연기자를 꿈꾸는 경력 10년차에게 '예쁘다'는 꼬리표는 어쩌면 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는 5년 만에 드라마로 돌아오면서 일부러 사회성 짙은 작품 '2004 인간시장'(SBS)을 골랐다.

"여자라면 누구나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싶은 성향이 있잖아요. 하지만 복귀작으로는 멜로나 가벼운 소재가 아니었으면 했어요. 가수로 활동하며 팬들에게 심어준 섹시한 이미지를 털어버리고 싶었거든요. '2004 인간시장'의 원작소설인 '인간시장'이 30, 40대 분들에게 익숙한 소재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러나 인터넷에는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박지윤이 오다혜 역에 어울리지 않는다' '박지윤이 오다혜 역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는 비방성 글이 적지 않았다. 마치 '바비인형이 무슨 제대로 된 연기를 하겠어'라고 비아냥거리듯이. 게다가 방송 전 화제를 모은 만큼 기대했던 시청률도 나오지 않았다. 속상할 법도 한데 의외로 의젓하다.

"시청률이 높게 나오면 감사하고 행복하겠지만 누구도 예측할 수 없잖아요. 처음 '인간시장'에 가졌던 기대감은 시청률과 무관하게 여전해요. 또 김상경.김상중씨처럼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들과 함께 하니까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도 많고요. 연기자로서는 아직 초기 단계니까 주위 의견을 많이 듣고 배우려고 해요."

'인간시장'을 선택한 게 실패라거나 단숨에 가수 이미지를 털어버리겠다는 과욕은 부리지 않는단다. 오히려 가수를 해온 시간만큼 연기자로서 노력해야 시청자들이 인정해 줄 것이라며 좀더 기다리겠단다.

이렇다할 슬럼프 없이 비교적 순탄한 가수 활동을 해오다 왜 지금 문득 연기자로 돌아왔는지 궁금했다. 혹시 이전 소속사와의 갈등설 등 몇몇 잡음이 심경을 바꾸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박지윤은 이제 때가 됐을 뿐이라고 말한다.

"나 자신에 대해 알아야 내면 연기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기다렸어요. 어릴 때 맡는 역할은 한계가 있잖아요."

이제 소녀가 아니라 여자가 된 박지윤은 지금 연기자로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다. 순제작비만 80억원을 투입할 한.중 합작 24부작 HD 드라마 '비천무'의 여주인공 설리 역에 캐스팅된 것이다.

한국의 외주제작사 에이트픽스와 중국의 상해제편창이 100% 사전 제작하는 이 드라마는 지난달 상하이에서 이미 촬영을 시작했고, 박지윤은 '인간시장'을 마치는 대로 5월 중 합류한다.

김혜린의 동명 인기만화를 원작으로 한 '비천무'는 2000년 김희선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했다. 그런 만큼 김희선의 설리와 어떻게 차별화하느냐가 박지윤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요즘은 점점 사랑이 현실적으로 변질돼 가잖아요. 무조건적인 사랑이나 믿음은 없어져버린 것 같아요. 하지만 설리는 내 몸이 찢어질지언정 끝까지 사랑을 믿는 너무나도 순수한 여자예요. 비록 눈물을 훔치지만 그 아픔을 견뎌낸다는 건 내면적으로 강한 여자라는 게 제가 해석한 설리예요. 바로 이 점을 부각시킬 생각이에요."

예쁘기만한 '바비'에서 속이 꽉 찬 설리로 다가설 수 있을지, 이건 순전히 박지윤의 몫이다.

글=안혜리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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