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week& cover story] 남들 즐겁게 하니 저절로 젊어져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 중간고사가 코앞
정신이 없다니까
그렇게도 원했던 공부
다시 할 수 있는 게
믿어지지 않아
남들이 극성스럽다 해도
너무나 즐거운
내 인생

강의를 끝내고 나오는 교수로 혼동할 뻔했다. 화사한 꽃으로 뒤덮인 교정에서 만난 여대생 김경애(64.사진(下))씨.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3학년인 그는 43년 만에 캠퍼스로 복귀한 늦깎이 대학생이다. 그래도 시험 앞에선 나이도 힘을 쓰지 못하나 보다. 만나자 마자 "중간고사를 코앞에 둬 정신이 없다"는 金씨의 얼굴엔 자못 긴장감마저 흐른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품엔 두꺼운 전공서적이 가득 들려 있다. '돌아온 60학번'金씨는 2학년 2학기 때인 1961년 가을에 학업을 포기했다가 올 초 다시 복학했다. 자퇴 사유는 결혼이었다. 재학생의 결혼 금지 학칙을 거스를 수 없어 떼밀리듯 택해야 했던 결정.

"하긴 그때만 해도 지금과 많이 달랐지요. 적지 않은 과 동기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휴학하거나 중퇴도 많이 하고. 그래도 막상 내가 공부를 그만둔다니까 얼마나 서럽던지…."

그런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金씨는 결혼한 뒤 남편과 3남1녀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책을 놓지 않는 등 배움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진행형인 영어 공부는 그 중 하나다. "80년대 중반께일 거예요. 비슷한 연배의 여성들과 단체 해외연수를 갔는데 모두가 외국어를 구사하더라고요. 순간'나는 뭐했나'라는 생각에 얼굴이 달아올랐지요. 해서 귀국하자마자 어학학원에 등록했어요. 그러고보니 벌써 10여년이 흘렀네요."

하지만 그녀의 향학열은 3년 전 갑작스레 남편이 세상을 뜨면서 급속하게 식어버렸다. 죽은 남편에 대한 미련과 충격 탓에 공부는 물론 삶의 의욕조차 시들해진 것.

金씨는 "빛바랜 흑백 사진을 담은 앨범을 뒤적이듯 옛 생각에만 빠져 있던 삶"이라며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본다. 그런 金씨에게 활기찬 인생을 되찾아 준 것이 바로 캠퍼스 복귀였다. 학교 측이 '재학생의 결혼 금지 원칙'을 폐기하면서 재입학 학생 모집 공고를 낸 것.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에 앞뒤 가릴 것 없이 복학 신청을 냈지요. 그러고는 곧장 마산에서 짐을 싸 학교 근처 원룸에서 하숙생활을 시작했어요."

적지 않은 나이도 그렇지만 혼자 객지 생활하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천만에요"였다. 그리고는 되묻는다.

"믿어지기나 합니까. 그렇게도 하고 싶던 공부를 다시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그의 전공이 철학이나 심리학 쪽과 관련이 많아서인지 요즘 비로소 '진짜 공부하는 재미'를 만끽한다고 했다. 金씨는 생활이 바뀌면서 인생 역시 확 바뀌었다고 했다. 행여 힘이 떨어져 학업을 따라가기 벅찰까봐 지난달부터는 교내 헬스클럽에도 다닌다고 한다. 마산여고 총동창회 회장과 마산 YWCA 회장도 맡았지만 지금은 여대생 생활이 더 만족스럽다는 눈치다.

"얼마 전 마산에 내려가 친구들을 만났는데 조금 극성스럽게 보였나 봐요. 하기야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너 공부해라. 지금도 안 늦었다'고 전도하고 다녔으니까요."

그리고는 "큰며느리도 나한테 자극 받았는지 얼마 전부터 다시 새벽에 중국어 공부를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흐뭇해한다. "돈쓰고 여행 다니는 것보다 공부가 훨씬 즐겁다"는 金씨는 분명 올 초 '전성기 인생'에 부푼 새내기였다.

표재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