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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분쟁·미국 - 이란, 이들이 해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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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카타르 지도자 셰이크 하마드
풍부한 자원 ‘당근’으로 레바논 평화협정 이끌어
국력 키우려 동맹 강화
 

중동의 작은 나라인 카타르의 지배자가 중동의 분쟁 해결사로 입지를 굳혔다.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56·사진)는 풍부한 원유와 천연가스를 무기로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예멘 등의 분쟁을 성공적으로 중재했다. 그 덕분에 중동의 강자 이란과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가 만만히 볼 수 없을 정도로 카타르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갔다. 그는 국가 안보를 위해 군사력을 증강시켰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들을 유치해 카타르를 중동의 인재 양성소로 만들었다. 카타르는 분쟁과 인권 탄압이 심한 중동에서 새로운 성공 모델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뉴욕 타임스(NYT)는 최근 “중동 언론인들은 셰이크 하마드를 중동의 메테르니히로 칭송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스트리아 정치인인 클레멘스 벤첼 로타르 폰 메테르니히는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으로 혼란해진 유럽의 구질서를 외교 수완으로 회복시킨 당대 최고의 외교관이었다.

셰이크 하마드는 올 5월 21일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레바논 평화협정을 성사시켰다. 레바논의 친서방 정부와 반정부 이슬람 무장조직인 헤즈볼라가 18개월간의 무력 충돌을 끝내고 권력을 나눠 갖게 했다. 유엔과 아랍연맹, 프랑스 등이 실패한 것을 성공시킨 것이다. 이 합의를 축하하기 위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도심의 한 아이스크림 가게는 새 메뉴로 ‘도하 합의 콘’을 선보였다.

카타르는 지난해 온건파이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지지세력인 파타와 강경파인 이슬람 무장조직 하마스 간의 평화협상을 중재했다. 예멘의 부족 갈등 해결에도 기여했다. 분쟁 세력들은 작은 나라 카타르를 위협 세력으로 보지 않고 공평한 중재자로 인정해 중재가 가능했다.

그는 1995년 6월 당시 최고 지배자였던 아버지가 스위스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무혈 쿠데타로 집권했다. 이후 카타르를 자원만 많은 소국에서 국제사회의 주역으로 키우는 데 힘썼다. 카타르를 지키기 위해선 다른 나라와의 동맹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외교력을 강화한 것이다.

그가 태어난 52년 카타르는 맨발의 유목민과 어부의 나라로 학교조차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 8만870달러로, 룩셈부르크를 제치고 최고 부자나라가 됐다. 석유와 천연가스 덕분이다. 그러나 그는 자원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육에 공을 들였다. 9·11 테러 이후 아랍인들의 미국 대학 입학이 어려워지자 2003년 10월에는 도하에 교육도시를 만들었다. 미국 코넬대와 카네기멜런대 분교 등을 유치했다. 입학 자격과 교육 과정 등이 미국 본교와 같은 수준이어서 중동의 인재들이 몰리고 있다. 또 무기를 현대화하고 군사훈련을 강화해 국방력을 강화했다. 그 결과 91년 걸프전 때는 미군을 도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무찌르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카프지 지역 탈환에도 기여했다.

중동의 민주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97년 중동에서는 이란에 이어 두 번째로 여성의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허용했다. 또 ‘중동의 CNN’으로 불리는 위성 뉴스채널인 알자지라를 설립해 언론의 감시 기능을 높였다.

정재홍 기자, 이형탁 인턴기자


미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기존의 강경 입장서 ‘변신’
이란에 경제적 혜택 제안
양국 농구 교류도 이끌어

이란 농구 국가대표팀이 조국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미국을 찾았다. 베이징 올림픽에 앞서 전지 훈련차 8일 일정으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이번 주부터 훈련을 했다. 이란 농구 대표팀의 미국 방문은 미국 농구협회와 국무부의 초청으로 이뤄졌다고 로이터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이란 대표팀 센터 하메드 에하다는 “예상과 다른 유타 주민의 환영에 놀랐다”며 1980년대 이후 외교 관계가 단절된 두 나라가 스포츠 교류를 통해 외교 관계를 회복하기를 희망했다.

이란이 핵 개발 계획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어 온 미국이 이란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무부의 초청을 받아 미국을 찾은 이란의 예술인·체육인·의료인이 수백 명에 달한다. 17일에는 미국이 대사관 개설 중간 단계인 이익대표부를 이란 수도 테헤란에 설치할 계획이란 외신 보도까지 나왔다. 그동안 이란이 먼저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지 않으면 어떤 대화에도 응하지 않겠다던 미국의 입장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콘돌리자 라이스(사진) 미 국무장관의 ‘변신’이 핵심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18일 보도했다. 라이스의 변신은 지난달 이란에 대해 경제적 혜택을 제안하는 문서를 보내면서 직접 서명한 데서 나타났다. 79년 이후 미국과의 고위급 외교 관계가 거의 단절됐던 이란의 외무장관은 미국 외교를 총괄하는 라이스 국무장관의 서명이 들어간 문서를 보고 ‘놀랐다(stunned)’고 인디펜던트는 전했다. 이 신문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을 때 시녀처럼 충실히 따랐던 라이스 장관이 지금은 미국과 이란 간 군사 충돌을 막는 데 최대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그가) 매파에서 비둘기파로 변신했다”고 설명했다.

라이스는 미국 정부가 이라크 침공 당시 근거로 내세웠던 사실들을 적극 옹호한 것은 물론 부시가 “꼭 전쟁을 해야 하는가”라고 묻자 주저 없이 “네”라고 대답한 사람이었다.

그런 라이스가 이제는 “이란 핵 문제를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며 대표적인 강경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인 딕 체니 부통령과 언쟁을 벌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인디펜던트는 이를 두고 ‘네오콘에 대한 쿠데타’라고 표현했다. 미국의 변화에 이란도 화답하고 있다. 마누셰르 모타키 이란 외무장관은 18일 미국이 이란에 이익대표부를 설치하고 양국 간 직항로를 개설하는 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29년간 적대 관계를 유지해 온 두 나라가 본격적인 해빙 무드에 들어가기 위해선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인디펜던트는 지적했다. 이란은 17일 미국의 입장 변화를 환영하면서도 샴페인을 터뜨리기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여전히 뚜렷하게 그려진 적색선이 남아 있다”며 이란이 평화적인 핵에너지를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보수파들은 이란의 핵 개발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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