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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관보’로 본 건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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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右>과 맥아더 장군. 전통적으로 중국 대륙과 친화력이 높았던 한반도의 운명은 이승만의 등장 이후 미국과 태평양 중심으로 바뀌며 이후 ‘새로운 대한민국’을 창조해 갔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첫 관보(官報·사진)는 1948년 9월 1일 발행됐다. 관보는 국가의 정보를 국민에게 공식적으로 알리는 간행물로, 공보처에서 펴냈다. 첫 관보답게 대한민국 헌법, 정부조직법(법률 제1호), 국무총리 임명에 관한 건(정부공고 제1호), 초대 내각 명단, 대통령 취임사, 정부 수립 대통령 기념사 등 새 국가의 기본 틀이 되는 내용들을 공시했다.

“나 이승만은 국헌을 준수하며, 국민의 복리를 증진하며, 국가를 보위하여 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에게 엄숙히 선서한다”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선서를 큰 활자를 사용해 별도 박스로 배치한 점이 눈길을 끈다. 흥미로운 것은 첫 관보에서 ‘대한민국 30년’이란 연호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했음을 밝힌 것이다. ‘대한민국 30년’은 관보 제5호(9월 22일)까지 사용했다.

제6호(9월 28일)부터 연호는 ‘단기’로 바뀐다. ‘연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대한민국의 공용 연호는 단군기원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단군이 새 나라 정체성의 상징물이자 민족과 국민의 구심점으로 격상된 것이다. 단군기원 법제화와 함께 단군의 지위를 ‘국조(國祖)’로 격상시키는 행사도 이어진다. 이승만 정부 내내 쓰이던 단기 연호는 61년 12월 2일 새로운 법률(제775호)이 제정되면서 폐기되고, 그때부터 서기 기원을 사용했다.

관보를 통해 볼 때 대한민국은 48년 8월 15일에 다 완성된 것은 아니다. 단군·태극기·애국가 등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국민적 동질감을 확보하는 일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제8호(10월 9일) 관보에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이 공포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대한민국의 공용 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식민지 잔재를 언어 차원에서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특별취재팀=배영대·원낙연·임장혁 기자

◇도움말 주신 분=기광서 조선대 교수,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신복룡 건국대 석좌교수, 유영익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석좌교수, 윤해동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 차상철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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