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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쟁점><전문가의견>가요의 선정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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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우리 사회에 요즘 「파괴현상」이라는 것이 일고 있다.상품시장에서의 「가격파괴」,조직사회에서의 「인사파괴」,대학강단에서의 「학력파괴」등 다양하다.가요계 저변에도 일종의 파괴바람이 불고있다.그것중 하나가 이른바 「주제파괴」다.
예전 같으면 생각할 수 없던 농도짙은 성적 묘사가 떳떳이(?)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이번에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댄스그룹디제이덕의 노래 『미녀와 야수』의 경우도 그런 현상의 하나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가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라는 경제적 발전에 걸맞게모든 분야의 자율.자생화가 미리미리 이뤄져 왔다면 때늦게 이런진통을 겪지 않아도 될 터였다.워낙 오랫동안 경직되게 통제해오던 끝이기 때문에 그 울타리의 파괴는 곧 큰 충격으로 느껴지게돼 있는 것이다.
아마 10~20년 정도만 더 지난뒤에 『미녀와 야수』같은 노래가 나왔다면 노래를 제공하는 쪽이나 받아들이는 쪽이 오늘같은갈등이나 충격없이 여과할수 있었을 것이다.
가요의 경우 그동안 「공연윤리위원회」등의 기관에서 소위 윤리주의 기준아래 너무도 충실하게 간섭,「개작」「불허」「금지」시킴으로써 실질적인 비판과 계도적 기능까지 독점해 왔다.그 결과 노래를 제공하는 쪽에서는 선택의 폭이 좁아지고,제 공받는 쪽에서는 기호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
이번 『미녀와 야수』의 「외설논란」「금지논란」은 기존의 좁은윤리적 울타리가 넓혀지면서 퉁겨져 나온 예상됐던 쇼크다.
여기서 창작자는 표현의 어디까지가 자신이 누려야 할 자유인지모르는 형편이고,재단된 작품만 공급받던 수요자쪽 또한 어느 정도까지 수용해야 민족의 자존과 국제화에 걸맞은 것인지 확신이 안 서있는 상태다.
결국 『미녀와 야수』의 충격과 갈등은 우리 사회의 구조 개편에 따른 시대적 아픔으로 받아들여야 한다.이번 일로 윤리위원회가 개별 사안을 뛰어넘어 필요이상 경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전파에 의해 동시에 무차별적으로 파급되고 있는 가요의 특수성을 감안,노래를 공급하는 쪽의 맹성이 있어야 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김지평 가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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