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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作 版權보호없이 중복출판 많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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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문학과지성사(약칭 문지)는 지난달말 자사(自社)출판권을 보호해달라는 협조요청 서한을 작가과 출판사들에 띄웠다.오는 7월 발효되는 외국 저작권 소급보호와 내년 출판시장 개방을 앞두고 국내 출판권 보호체제의 정비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
이 회사가 주장한 자사 출판권 대표적 위반 사례는 민음사.솔출판사.도서출판 삼성 등에서 펴낸 문학선집.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시리즈의 하나인 최인훈씨의 『웃음소리』 가운데 6편이문지의 『최인훈 전집』에서 아무런 동의없이 수록 됐다는 것.또솔출판사 「한국명작소설 총서」의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조세희 지음)16편과 역시 같은 작가에 같은 이름으로 도서출판삼성에서 지난해초 나온 선집의 4편도 문지의 허락없이 출간됐다고 주장했다.
물론 새로 책을 펴낸 출판사와 작가 사이의 재출간 계약은 있었다.문제는 문지와 신규 출판사 사이에 동의 혹은 허락 과정이생략됐다는 점.국내 저작권법에는 처음 계약서에 명시된 유효기간(보통 3~5년)이 경과한 뒤에도 저자가 계약■ 지를 통보하지않으면 출판권은 기존 출판사가 계속 갖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따라서 첫 계약이 말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기획을 하려는출판사는 반드시 이전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야 정도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내 출판계에는 이런 절차가 무시됐었다.이전에 나온 책과는 상관없이 작가와 출판사들은 새로운 기획에따라 겉만 다르고 속은 엇비슷한 책들을 양산해왔다.또 잘 알고지내는 사이에 서로 얼굴을 찌푸리는 일은 가급적 피 하자는 인정주의 발상에서 법적 대응도 꺼려왔었다.
이에 따라 이른바 인기작가들은 많게는 10종 가까운 선집을 내놓게 됐다.이런 그릇된 관행의 피해는 독자들에게 돌아간다.신간으로 잘못 알고 책을 샀지만 많은 부분이 이미 접했던 내용임을 확인하는 순간 배신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한국의 대표적 소설가인 이문열씨의 경우 작가가 확인한 것만 8종.李씨는 94년말 5권으로 된 「중단편전집」(둥지刊) 서문에서 중복출판이라는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면서 『앞으로 발표될 중단편집은 언제나 신작들로 채워질 것』이라고 선언 했다.
그러나 李씨의 이 선언은 1년여만에 지켜지지 않았다.올해초 청아출판사에서 출간된 자선 대표작품집 『이강에서』에 수록된 작품 8편 가운데 신작은 95년 동서문학 겨울호에 실린 『달아난악령』단 1편.李씨는 이 점을 의식한듯 책머리에 서 『모질지 못한 내 성품이 일을 그르쳐 또 한번 독자들의 오해를 각오하고이 선집을 만들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둥지출판사측은 李씨와 별다른 계약을 안 맺어 청아쪽의 중복출판에 제동을 걸 수가없었다고 밝혔다.그렇다면 둥지 이 전에 나온 선집과 李씨는 계약관계를 종료했는가.그것도 아니다.이에 대해 李씨는 『청아출판사 선집은 5년전부터 출판사측의 요청에 의해 시작된 것』이라며『이전의 출판계약도 기존 출판사들의 간곡한 호소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말소하지 못 했다』고 말했다.과감하게 계약만료를 시도하다 보면 자기만 나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관행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또 언제까지계속될 것인가.
우선 출판권에 대한 인식부족을 들 수 있다.책도 하나의 재산권인 만큼 저자의 저작권은 물론 책을 펴낸 출판사의 권리도 인정해야 하는데 국내 출판사와 작가들 사이에는 「책은 펴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는 출판사에 대해 작가들의 우위라는 우리 출판계의 독특한 생리도 작용한다.저작권은 작가에게 있는 만큼 일정 기간 후에 구성을 달리해 내도 큰 문제는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다.또 책을 새로 찍어 수입을 높이려는 작가와 출판사의 계산도 끼어든다. 또 다른 원인은 출판계약의 부재.계약 자체가 없다보니 언제 어디에서도 비슷한 내용으로 중복게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민음사 이영준 주간은 신간을 낼 때 국내에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는 대략 20%에 그친다고 추정했다.이문열씨는 출판사들이 문학총서 혹은 대표선집류의 엇비슷한 기획을 중단하거나 아니면 첫 기획부터 출판권을 영구적으로 사들이는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출판전문가들은 특히 내년으로 예정된 출판개방을 앞두고 지금까지 「안면주의」혹은 「온정주의」로 유지됐던 국내 출판계의 그릇된 관행 정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개방에 앞서 어떤형식으로든 우리 내부의 정리가 선결돼야 한다는 시각으로 우선 출판사끼리 제살을 파먹는 식의 중복출판의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꼽고 있다.
지금 같아서는 외국출판사가 한국문학선집을 펴낼 경우 작가의 동의만 있으면 국내 출판사들은 「눈뜬 장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문지가 갑자기 협조 서한을 보낸 사연도 그릇된 관행에 따른 상호 피해를 막자는데 있다.
이에 민음사는 현재 기획중인 「오늘의 시인 총서」가운데 이성복.최승자씨의 시집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문지측의 출판권을 인정한 작가들의 요청을 수용한 결과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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