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여행>萬事休矣-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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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고보훈(高保勛)은 오대십국(五代十國)중 형남(荊南,南平이라고도함.현재 湖北省 서부지역)의 말기 왕이다.암혼(暗昏).음탕.
사치로 국정은 돌보지 않고 매일 창기(娼妓)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형남은 소국이었으므로 건국 초부터 줄타기 외교를 벌이지 않으면 안되었다.후량(後梁)에 붙었다가 후량이 망하고 후당(後唐)이 서자 이번에는 후당에 붙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군주의 영명한 지도력이다.분발해서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당찬 의지가 없는 한 국가의 명운(命運)은 늘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무능한 군주였다.성격이 유순해 강단이 없었던 데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총애를 받고 성장했으므로 온실속의화초나 다름 없었다.이런 무능하고 연약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려간다는 것은 소금밭에서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것 과 다를 바 없다.조정의 백관(百官)은 다들 나라의 장래가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묘책이 나오지도 않았다.그들의 입에서는 오직 『이제 만사가 끝장이구나(萬事休矣)』하는 탄식만 터져나올 뿐이었다.
그가 죽고 얼마 안가 형남은 결국 새로이 중원의 지배자로 등장한 송(宋)에 의해 망하고 만다.907년부터 963년까지 5대 57년간 존속했을 뿐이다.
만사휴의(萬事休矣)는 백방(百方)으로 노력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는 막막한 경우에 하는 일종의 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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