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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떼 오는데 … ” 어민들 기름값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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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4일 오전 경남 진해 속천항에서 남쪽으로 20㎞쯤 떨어진 거제도 동쪽바다. 금어기(4~6월)가 끝나 1일부터 올해 첫 멸치잡이에 나선 희영2호 선단. 선단 앞에 있던 어로탐사선 안에서 어군탐지기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30년 경력의 이성규(65) 어로장은 멸치떼가 나타나자 무전으로 본선 2척에 다급하게 지시를 내린다. 나란히 항해하던 본선 2척이 V자형으로 벌어지면서 그물을 내렸다. 한 시간 뒤 가공·운반선의 양망기(揚網機)가 그물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길이 1㎞가 넘는 그물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은빛으로 반짝이는 멸치들이 파닥거렸다.

14일 경남 거제도 부근 해상에서 멸치잡이에 나선 희영2호 선단 2척의 작업선이 잡은 멸치를 배 위로 옮기기 위해 그물을 끌어 올리고 있다. 멸치잡이 배들은 치솟는 기름값 때문에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흡입 파이프가 그물 속에 내려지자 순식간에 멸치들이 배 위의 어창으로 빨려 올라온다. 선원들이 멸치를 작은 그물로 퍼내 가로·세로 길이가 각 1m쯤 되는 플라스틱 발 위에 얹은 뒤 차곡차곡 쌓아 바닷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 넣어 삶아 낸다. 삶은 멸치는 갑판 뒤로 옮겨 해풍에 말린다. 저녁에는 운반선이 멸치를 육지의 어장막으로 옮겨 햇볕과 열풍기에 말린다.

이달 1일 새벽 마산시 구산면 난포리 어장막을 떠난 이 선단은 거제도 장목면 앞바다에서 첫 그물을 내린 뒤 거제도와 부산 가덕도 사이 왕복 20㎞ 해역만 오가며 멸치잡이를 하고 있다. 이 해역에는 10여 개의 멸치 선단이 몰려 멸치 삶는 연기를 하얗게 뿜어 올리며 조업을 하고 있다.

이용표(59) 선장은 “지난해에는 먼바다로 나갔으나 올해는 기름값 때문에 가까운 곳에서 조업을 한다”며 “비좁은 해역에 멸치배들이 한꺼번에 많이 몰리니 조업하기도 어렵고 멸치떼가 언제 고갈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기름값 벌기에도 빠듯=멸치잡이 배들이 고유가와 싸우고 있다. 경상남도에서 멸치잡이 58개 선단 가운데 8개 선단이 아예 출어를 포기했다. 바다로 나간 선단들도 기름값 벌기가 빠듯하다.

4척으로 이뤄진 선단들이 하루에 사용하는 면세유는 20∼25드럼. 드럼당 22만원으로 계산할 경우 기름값만 500만원 안팎이다. 여기에 선원 50여 명의 하루 인건비(5만5000∼6만5000원) 300여만원에다 부식비·어구비 등을 포함하면 하루 평균 1000여만원의 어획량을 올려야 한다.

통영 기선권현망(機船權現網·멸치잡이 그물어구를 실은 배) 수협은 멸치잡이 1개 선단의 손익분기점을 지난해 24억여원에서 올해는 28억원으로 올려 잡았다. 어업용 면세유 1드럼(200L)가격이 지난해 10만1527원에서 지금은 22만3160원으로 두 배쯤 올랐기 때문이다.

희영2호 선단은 14일 동안 멸치 2만 박스(1.5㎏ 기준)를 잡아 기선권현망 수협 위판을 통해 1억4000만원의 어획량을 올렸다. 하루 평균 1000만원을 번 셈이다. 그러나 날씨나 어황이 나빠 조업을 못 하는 날을 뺀 예년의 한달 평균 조업일수가 23일이어서 적자는 불을 보듯 뻔하다.

멸치잡이 배 선주들 모임인 권우회 공인찬(53) 회장은 “선단의 10% 정도만 흑자를 내고 나머지 선단들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고 있다”며 “선원들과 설 무렵에 계약을 하기 때문에 적자를 감수하고 조업을 나간다”고 말했다.

저녁이 되자 멸치잡이 선단들은 조업하던 곳에 닻을 내리고 정박을 했다. 조업이 끝났지만 기름값을 아끼려고 저녁에 항구로 돌아가지 않고 바다 위에서 잠을 자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거의 매일 항구로 들어갔으나 지금은 10여 일에 한 번쯤 돌아간다고 한다.

기름값 폭등에 대한 정부 대책을 요구하는 어민들은 실력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72개 어민단체로 구성된 전국어업인연대는 다음달 초 한국수산경영인연합회 2만여 명의 회원과 함께 부산 남항과 인천·제주·포항·군산 등 전국 9개 항구에서 기름값 폭등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해상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통영=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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