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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피지 같은 소국도 영업무대는 넓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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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개척자 정신과 마당발 인맥. 1970~80년대 최고의 직장으로 각광받던 종합상사 역군들이 해외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무기였다. ‘에스키모에게는 냉장고를, 아프리카 사람들에겐 신발을 판다’는 이야기는 상사맨들의 신화이자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존재가치가 약해지고 급기야 자본잠식·분식회계 등으로 종합상사들은 속속 채권은행단 주도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종합상사 시대는 저무는 듯했다.

현대종합상사의 노영돈(55·사진) 사장이 상사맨의 가치를 새롭게 되살리느라 강행군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18일까지 캐나다·대만·호주·터키를 돌며 한 달간 쉴 새 없이 해외영업회의를 열었다. 가는 곳마다 되뇐 건 ‘틈새시장 공략’과 ‘인적 네트워크 구축’이었다.

노 사장은 이달 6~10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동남아·호주지역 영업회의에서 “최근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 불안정으로 시장이 위축된다고 너무 리스크 관리에 몰두하다가 기회를 놓쳐선 곤란하다”고 당부했다. 고유가와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경제위기설이 확산되는 가운데 적극적인 시장개척을 주문한 것이다. “위기상황일수록 큰 이득을 볼 기회가 커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틈새시장 공략도 주문했다. “방글라데시·네팔·브루나이·피지·사모아 등 정세가 불안정하거나 시장이 작은 국가에서도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라”는 이야기다. 지난달 15~21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미주지역 영업회의나, 25~27일 대만 타이베이의 중국·일본지역 영업회의에도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고 독려했다.

‘인적 네트워크’는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 “거래할 때 같은 조건이라면 평소 지인이 있고 마음이 더 가는 업체에 발길이 가게 돼 있다”는 것이다. “안면은 영업경쟁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무기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해외 직원·거래처와 탄탄한 인맥을 쌓는 게 상사영업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노 사장은 31년 상사맨이다. 1977년 현대종합상사 공채 1기로 입사해 지난해 3월 꼭 30년만에 사장이 되기까지 줄곧 영업현장을 지켰다. 그는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인도에 철강업체인 ‘포스현대’를 출범시키는 모험을 감행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2003년 회사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을 땐 그간의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큰 거래처인 한 철강제조업체가 이탈하지 않도록 잡기도 했다.

그가 사장 취임 후 특히 관심을 쏟는 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다. 2003년 워크아웃으로 거래가 끊어진 지 5년 만에 러시아와의 페트칩 공급계약을 성사시켰고, 투르크메니스탄 교통부와 버스 수출을 위한 양해각서를 교환하기도 했다. 자원개발이나 중국 조선소 진출 등 새 사업도 벌인다. 하지만 여전히 무역이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수출시장 개척이 관심사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1조6694억원으로 전년보다 50%가량 증가했다. 회사 측은 “1분기에 지난해 동기 대비 매출이 49%, 영업이익이 140% 늘어나 올해도 전망이 밝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이에 힘입어 연말께 워크아웃 졸업을 기대한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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