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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탄소 사회’가 생존 키워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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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주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가 열린 일본 도야코는 아픈 추억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일본 100대 절경 중 한 곳이지만 1950년대 유황광의 폐수로 강(强)산성화되면서 죽음의 호수가 됐다. 70년대에 화산 분출로 알칼리 화산재가 들어오면서 겨우 회복됐다. 전 세계는 G8 회의가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서 이 화산과 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지만 별다른 진전 없이 폐막됐다. 선진국 정상들이 속내를 숨기고 감축이라는 명분을 따르기에는 온실가스 감축에 너무 커다란 이해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기후변화는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진국은 경제 패러다임을 저탄소형으로 바꾸고 있다. 국제사회의 저탄소 논의는 지난 2세기 동안 기계문명과 전기문명을 바탕으로 세계 주도권을 장악했던 유럽과 미국이 자신에게 유리한 새로운 체제 만들기의 신경전인 셈이다. 고유가·기후변화·자원 문제가 21세기의 화두로 등장하면서 저탄소 사회로 가는 기술과 시스템을 확보한 국가가 세계 정치·경제를 주도하게 될 것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후변화 문제는 누가 얼마나 감축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먼저 저탄소 사회를 달성하느냐가 초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G8 확대 정상회의에서 한국도 저탄소 국가로 나아가고 동아시아의 리더십을 발휘하겠다고 표명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물론 선진국과 동일 수준의 목표를 가질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국제적 위상에 맞는 온실가스 감축 방향을 제시하고 지구적 게임인 기후변화 협상에서도 ‘메이저 리그’로 진출하겠다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온실가스 감축 협상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은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이냐, 아니면 영원히 2군에 머무를 것이냐를 결정하는 핵심이라 해도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이 대통령이 ‘동아시아 기후 파트너십’을 제안하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가교 역할을 천명한 것은 선진국들이 공허하게 2050년까지 온실가스의 50%를 감축하겠다고 약속한 것보다 훨씬 값진 일이다. 우선 국제사회에 한국의 위상에 부합하는 실제적인 공헌을 할 수 있고, 한국이 경제성장과 저탄소 사회 달성을 양립시키는 녹색 성장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에서의 경제적인 목표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강의 기적이 좋은 모델이 된 것처럼 개도국의 온난화 시장 진출에 큰 힘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저탄소 사회의 실현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국제사회가 합의한 2050년까지 50% 감축을 가정하면, 지금까지 인류가 화석연료로부터 누려온 대부분의 서비스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생활과 생산의 필수 요소인 에너지를 줄일 경우 삶의 질이 희생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꿈은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유지함과 동시에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어 가면서 저탄소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산업·생활 전 부문의 변화가 요구될 수밖에 없다. 신재생 에너지, 자원생산, 제품의 생산·사용·폐기 등 전 단계에서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기술개발과 이를 적용할 수 있는 체제의 구축이 그 출발점이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시간이 지연되면 국가나 기업은 앞서가는 국가와 기업을 따라잡기에 급급한 구조가 될 것이다.

또한 지금의 에너지 수송·생산시설 등 인프라의 교체와 기술개발 지원·탄소배출권 등을 뒷받침하자면 금융의 일대 전환이 요구된다. 선진국이 저탄소 기술개발을 천명하고,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크레딧화해 화폐와 같이 유통할 수 있는 금융시스템을 구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술과 금융이 저탄소 사회 구축의 양대 핵심 테마이기 때문이다.

저탄소 기술과 금융시스템으로 무장한 선진국이 개도국에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는 형국은 19세기 말 열강 무역선의 조선 개국 요구와 흡사하다. 이제 저탄소 사회 구축은 치열한 국제경쟁의 생존 키워드가 되었다. 도야코 호수를 살린 화산은 이 시대에 무엇일까. 어서 그 해답을 찾아가자.

박종식 삼성지구환경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