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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민주주의는 衆愚정치 빠질 수 있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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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 14면

조규광(83) 초대 헌법재판소장은 최근의 촛불 시위와 관련, “직접민주주의는 조그만 사회에서나 가능할지 모르지만 현대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로, 중우(衆愚)정치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우정치란 이성보다 충동적인 대중의 의견에 의해 좌우되는 정치를 이른다. 그는 제헌절 60주년을 앞두고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거리의 직접민주주의가 국회의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하는 상황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조 전 소장은 서울지법 부장판사와 서울변호사회 회장을 거쳐 초대 헌법재판소장(1988~94년)을 지낸 법조계 원로다. 헌재는 1987년 직선제 개헌과 함께 도입됐다.

제헌 60돌을 말한다:조규광 초대 헌재소장

그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 주장하는 쪽으로 사회가 움직이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 질서 공백’ 논란에 대해서는 “법치주의는 틀림없이 지켜나가야 할 가치이고 정신”이라며 “국가의 틀이 법률로 짜여 있는 만큼 모든 국가기관과 국민이 그 범위 내에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제시했다. 조 전 소장은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면서도 “눈이 나빠져 신문을 다 못 보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 대한 걱정이 많다”는 말을 거듭했다. 다음은 조 전 소장과의 일문일답.

-최근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는 직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와 충돌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직접민주주의가 조그만 사회에서는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조그만 사회가 아니라면 그건 말도 안 된다. 말이야 쉬운 것이지, 어떻게 현대 국가에 그런 게 있을 수 있나. 스위스 자치 주 말고… 자칫 중우정치에 빠질 수 있다.”

-사회 갈등을 풀어나갈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고 있는데.
“그런 시스템이 왜 없겠나. 헌법 전문(前文)만 읽어봐도 답이 나와 있다.”

-헌법 전문의 정신은 어떤 것인지.
“(손수 갖고 나온 법전을 펼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는 대목을 가리키며) 공동생활에 있어 질서를 지켜나가자는, 그런 기본 정신을 따라가면 된다.”

-최근 여권을 중심으로 개헌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현행 헌법은 괜찮은 헌법이다. 여전히 가치를 지니고 있다. 너무 앞서간 측면도 있지만….”

-대통령 중임제나 내각 책임제 등으로의 권력구조 개편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제도가 굴러가다 보면 이런저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대통령 중임제도 하고, 내각제도 해보지 않았나. 계속 문제가 생기니까 단임제를 했던 것 아닌가. 권력 지망생들이 서로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욕심을 버리고 생각해봐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20년간 많은 발전을 했는데.
“창립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 후임 소장과 재판관들이 열심히 한 덕분이다. 다만 앞으로는 이론이나 주문(판결·결정의 결론) 형식 등을 좀 더 창조적으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초창기 헌재의 기틀을 잡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당시 일반인뿐 아니라 법조인조차 헌재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몰랐다. 헌재가 들어갈 청사를 구하는 것부터 주심 결정 방법, 직제, 좌석 배치까지 일일이 내 손을 거쳐야 했다. 어떻게 하면 헌재를 똑바로 세워나갈까 걱정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재판관 아홉 사람이 모두 일기당천(一騎當千)하는 강자들이었다.”

-대통령 탄핵이나 행정수도 이전 같은 정치 문제들이 헌재로 들어오고 있는데, 정치가 사법화되고 있다고 지적하는 시각이 있다.
“독일에서도 그런 말이 나왔다. 정치·경제·사회가 헌법이라는 틀 안에 있는 것이니까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재판관들의) 눈이 왼쪽으로 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오른쪽으로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재판관 구성이 다양해져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동감한다. 지금은 재판관 전원이 판·검사 출신 아니냐. 변호사와 대학교수 출신을 하나씩 넣고, 가능하면 사회학자도 한 사람 포함시켜야 한다. 헌재가 실정법만 다루는 건 아니지 않으냐. 모르는 것이 있다면 다른 재판관에게 물어볼 수도 있는 것이고….”

-퇴임 후 어떻게 지내는지.
“변호사 활동은 안 했다. 원래 비사교적인 사람인 데다, 돈 벌 생각도 없었다. 자식들 학비만 대면 그만이지…. 69세에 헌재 소장 퇴임하고 나서 ‘이 세상 뜰 때까지 실컷 철학 공부를 하자’고 생각했다. 대학(서울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지만, 철학 교수가 젊었을 때 꿈이었다. 철학 원서를 읽느라 외국어 공부도 하면서 지내고 있다.”

-사회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가 잘 굴러갔으면 좋겠다고 걱정만 한다. 그런 점에서 헌법에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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