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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에디터 칼럼

이명박 꺾은 촛불, 시장은 못 이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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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촛불시위는 요즘 소강 상태다. 시위가 폭력으로 치닫고, 시민보다는 데모꾼들의 잔치가 벌어지고, 인터넷에 횡행했던 온갖 유언비어가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촛불은 동력을 잃고 있다.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가 진실성 논란에 휩싸여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지난 두 달 동안 촛불의 기세는 맹렬했다. 정치권과 공권력, 언론과 기업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기존 질서와 체제를 모두 태워버릴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거리 시위의 DNA’가 유모차를 모는 젊은 엄마와 초등학생에게까지 각인됐다. ‘우리가 직접 나서면 기존 체제를 깨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다. 이른바 ‘촛불의 추억’이다.

이런 추억이 한국 민주주의의 영광으로 기록될지 아니면 상처로 남을지에 대해선 해석이 다르다. 정권을 빼앗긴 민주당과 좌파 지식인 진영에선 “위대한 직접민주주의의 희망을 봤다”며 찬가를 부르고 있다. 지난 대선 참패로부터의 화려한 부활이다. 반면 한나라당과 우파 지식인들은 “이게 중국을 망가뜨린 문화혁명과 뭐가 다르냐”고 항변한다. 하지만 촛불의 위력에 질려서인지 그들의 목소리는 아직 조그맣다.

두 달 넘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는 1945년 해방 직후의 좌우익 대립을 연상하는 상황이 밤마다 연출됐다. 외국 기자들이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고,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한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시위가 벌어지느냐”고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촛불시위는 이명박 대통령을 꺾었다. 집권 3개월이 안 된 대통령은 두 번씩이나 사죄를 했다. 촛불의 일방적인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관심은 ‘촛불이 과연 시장(market)도 이길 것이냐’에 쏠리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민들은 앞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냐’다. 현재까지 진행 상황은 촛불에 불리해 보인다. 미국산 쇠고기가 시판된 이후 전국적으로 불티난 듯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6개월 뒤에는 어떨까. 장담은 할 수 없어도 현재 분위기대로라면 미국산 쇠고기는 더 잘 팔릴 가능성이 있다. 소비자는 결국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감정과 정서를 앞세우는 시위대와는 다르다.

2003년 수입이 금지되기 전까지 국내 소비자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멀쩡하게 잘 먹었다. 한우에 비해 맛 차이가 크지 않고, 가격이 훨씬 싸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그랬지만 앞으로는 안 먹는다? 아마 안 그럴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올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 먹어보니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그 난리를 쳤던 거지?” 이에 대해 광우병 대책위원회에 속한 이른바 ‘시민단체’들과 민주당은 답변을 미리 준비해둬야 할지도 모른다.

촛불시위가 처음 시작된 건 2002년이었다. 미군 훈련 차량에 치여 사망한 여중생 미선이, 효순이 때다. 당시 촛불시위대 사이에서는 “미군이 학생들을 일부러 깔아 죽였다”는 식의 유언비어가 마구 퍼졌다. 여중생들의 처참한 시신 사진도 돌았다. 때마침 김대업이라는 인물이 등장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 문제를 터뜨렸다. 그런 과정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진실은 밝혀졌다. 사람들은 김대업의 폭로가 거짓이었고, 미선·효순의 불행한 죽음도 정치적으로 악용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지난해 대선 때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명박 후보와 BBK를 연결시키기 위해 총력전을 폈다. 정황으로 보면 의심가는 데가 많았다. 그런데도 여론은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왜냐면 ‘미선·효순’과 ‘김대업’에 대한 학습효과 때문이었다.

지난 두 달 동안 진보진영과 민주당은 촛불시위에 모든 것을 거는 것처럼 행동했다. 87년 6·10 항쟁 이후 최대 인파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나 역시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와 정치 행태가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정상적인 투표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을 물러나라고, 헌정 질서를 깨버리라고 시위를 벌이는 게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정도는 안다.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에 항거해 “투표권을 돌려달라”고 외쳤던 6·10 항쟁과 지금의 촛불시위가 같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안다.

링컨은 말했다. “모든 사람을 잠깐 속이거나, 소수의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과연 광우병에 걸리는 것일까. 진실은 시간이 밝혀줄 것이다. 시간은 민주당과 이른바 좌파 진영의 편이 아닐 것이다.

김종혁 사회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