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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전 노벨상 이론, 틀렸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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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슈리퍼 박사는 자신의 발표가 끝난 직후 있을 김 교수의 발표를 듣지 않은 채 또 한 차례 예정된 자신의 발표를 취소하고 황급히 학술대회장을 빠져나갔다.

김 교수가 이번에는 기존 초전도체를 설명하는 세부 이론이 크게 틀렸다는 논문을 세계 최정상 응용물리학술지인 ‘저널 오브 어플라이드 피직스’ 6월호에 발표했다. 초전도체를 보여주는 겉포장은 맞지만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이론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벨 물리학상의 텃밭으로 알려진 초전도체 학계의 관심이 김 교수의 연구 성과에 쏠리는 이유다. 지금까지 초전도체 학문은 초전도체를 첫 발견한 네덜란드 물리학자 오네스가 191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것을 포함, 모두 여섯 차례나 노벨상이 주어졌다. 김 교수는 최근 자신이 개발한 초전도체 연구 성과에 대해 특허를 출원하기 위해 내한했다.

그는 89년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초전도체를 연구해 오고 있다.

◇노벨상 수상 이론 바로잡아=로버트 슈리퍼 박사와 존 바딘, 레온 쿠퍼 박사는 57년 초전도 현상을 수식으로 설명했다. 이들 세 명의 이름 첫 글자를 딴 BCS 이론은 초전도체를 설명하는 대표적 이론이다. 그 공로로 세 명은 7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 이론을 조셉슨 소자 등 초전도체에 적용했을 경우 대부분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김 교수가 처음으로 알아냈다.

BCS 이론은 조셉슨 소자에서 나타나는 초전류가 물질의 종류와 온도에 상관없이 어떤 크기를 갖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물질에 따라 초전류의 크기는 다르며, 큰 저항을 갖는 물질의 경우는 BCS로 계산한 결과에 비해 10분의 1~1만분의 1밖에 나타나지 않는 것도 수두룩하다는 것을 이론과 실험으로 규명했다. BCS 이론의 경우 저항값이 작은 것에만 맞고, 저항이 큰 물질에서는 결과가 대부분 틀렸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MRI)와 인간의 뇌, 심장에서 나오는 자기장을 측정하는 뇌자도·심자도 등에는 저항이 적고,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온도가 극저온인 니오비움(Nb) 계열의 소형 초전도체만 주로 쓸 수밖에 없었다. 저항이 크고, 고온에서 초전도현상이 일어나는 물질의 경우 계산식과 실제 값이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성능이 좋은 초전도 물질이 있어도 MRI 등에 쓰기 어려웠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이론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고도로 정밀해야 하는 기기에 적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김 교수는 2003년 러시아 과학자와 미국 과학자 세 명이 초전 도체로 노벨상을 타는 데도 자신의 연구 성과가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그는 러시아 과학자들이 59년 초전도체를 해석할 수 있는 이론을 발표(GLAG)한 것을 연구한 결과, 그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90년 초 포스닥 시절 증명했다. 이 때문에 GLAG 이론을 만든 세 사람 중 수식을 만든 고르코프 박사만 빠진 채 2003년 나머지 두 사람이 미국 과학자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했다. 김 교수가 그 이론이 틀렸다고 하지 않았다면 고르코프도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포스닥 시절 자신이 노벨상 수상 이론을 바로잡은 초전도체 연구 성과를 지도 교수가 몰래 혼자 차지하려다 수식을 틀리게 쓰는 바람에 그 교수가 공개적으로 학술지에 사과한 일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초전도 수퍼컴 개발에도 결정적 역할=김 교수의 연구 성과는 안보용으로 미·일·유럽 등 열강이 개발에 나서고 있는 초전도 수퍼컴퓨터뿐 아니라 MRI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초전도 수퍼컴퓨터는 초당 1000조번의 수학 연산을 할 수 있는 것으로 핵폭발 등의 가상실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꼭 개발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기존 반도체로 이 컴퓨터를 개발할 경우 5만~10만 개의 2~3.5GHz 프로세서가 필요하다. 그러나 초전도체로 만들면 몇 천 개로도 가능한 것으로 과학자들은 예측하고 있다. 50~100GHz짜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초전도체 기술을 이용할 경우 자성 강도를 세 배 정도 높게 할 수 있으며, 연간 3조원 시장 규모인 MRI용 니오비움-티타늄 초전도체를 대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초전도체=섭씨 영하 140~269도 정도가 되면 저항이 없어지며,자석 위에 올려 놓으면 공중으로 떠오르기도 하는 물질. 두 개의 초전도체 사이에 전기가 통하지 않는 얇은 막을 끼워 놓으면 전압을 가하지 않아도 두 초전도체 간에 전류가 흐르는 ‘조셉슨 효과’라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조셉슨 효과를 응용한 스퀴드센서는 MRI의 핵심 소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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