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네티즌이 보는 역대 왕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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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통일 제국인 진나라에 대해서는 ‘웅장한 진(雄秦), 폭정의 진(暴秦)’으로 평가가 엇갈린다. 한족(漢族)·한어(漢語)·한시(漢詩)라는 명칭에서 보이듯 항우를 물리친 유방이 세운 한나라를 중화제국의 모태로 본다. 문경지치(文景之治:BC 180~141)를 이어 제위에 오른 무제(武帝 劉徹: 재위 BC 141~87)는 끊임없는 확장 정책을 통해 광대역의 제국을 건설해 이름을 떨쳤다.


강성한 국력, 찬란한 문화, 발달된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성당(盛唐)의 정관지치(貞觀之治)는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제국의 문명을 꽃피웠다. 송 왕조는 공·상업을 중시하는 정책을 폈다. 인쇄업은 물론 각종 제조업이 발전해 부강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특히 도시 문화가 발전해 당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의 절반을 차지했다.

명 왕조는 개국 후 엄격한 법치를 시행했다. 조공제도에 입각해 중화제국의 틀을 단단히 했다. 1449년 북벌에 나선 정통제(正統帝)가 오히려 몽고족에 포로로 잡히는 ‘토목보의 변(土木堡之變)’이 발생했다.

명나라 조정은 정통제의 동생을 황제로 앉히고 오히려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네티즌이 강직한 명이라 부르는 근거다. 그러나 대외 교류에는 소극적인 면모를 보였다.

한인 왕조에 비해 이민족 왕조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

몽고족은 낙후한 유목민족이었지만 강력한 군사력과 잔혹한 민중 학살, 민족 차별 정책으로 중원을 지배했다. 원의 치세 동안 이렇다 할 문화의 창조는 없었던 것으로 평가한다. 원의 치세는 결국 한인들의 지구전을 당해내지 못했다.

청조의 민족정책은 원 왕조에 비해서는 나아졌지만 만주족 통치자 앞에서 한족들은 스스로를 노예(奴隸)라 부르는 처지가 됐다. 청조 후기에는 국력이 쇠퇴해져 서구 열강의 노예로 전락했다. 청 왕조는 한족에게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선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지금에 와서는 비굴한 왕조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한족 중심의 왕조 평가는 최근 중국에서 유행하는 신민족주의의 산물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한과 당의 부흥을 꿈꾸는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중화 민족주의가 더 기승을 부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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