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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요동 치는 환율 … 가슴 치는 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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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무리수 쓰는 당국=8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 밤 외환당국이 역외선물환(NDF)시장에 약 3억 달러를 내다팔았다는 소문이 돌면서 전날 종가보다 5.9원 떨어진 1037원에 시작했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주식을 내다팔고 원유를 사기 위한 정유사들의 결제 수요가 몰리면서 장 초반 환율은 꾸물꾸물 오름세를 탔다. 환율이 1040원 선을 위협할 기미를 보이자 당국은 약 20억 달러를 풀었다. 당국의 대규모 개입에 환율은 즉각 1026원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얼마 못 가 1032원 선으로 반등했다. 당국은 오후에 다시 5억 달러를 더 풀었다. 시장 관계자는 “당국의 개입이 없었으면 1040원 선을 뚫고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당국은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환율 상승세를 꺾어놓겠다는 태세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과도한 쏠림 현상이 시정되지 않으면 확실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믿도록 분명한 조치를 하겠다”며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들더라도 확실히 시장을 진정시키겠다”고 말했다. 이날 환율은 1032.7원으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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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갈리는 시장=외환보유액을 투입한 당국의 무력시위가 성공하려면 시장이 수긍해야 한다. 하지만 시장엔 아직 확신이 없는 듯하다. 워낙 달러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한 외국계은행 딜러는 “정부가 나중엔 환율 상승을 용인할 것이란 예측은 약해졌지만 고유가라는 변수는 여전하다”며 “외국인들의 ‘셀코리아’ 행진도 계속되고 있어 달러 수요가 쉽게 줄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당국은 올 5월 말 이후 약 140억 달러를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러나 당국이 달러를 풀 때만 환율이 내려갈 뿐 곧 다시 튀어오르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당국이 달러를 내놓기를 기다렸다 받아먹는 형국이다. 이 사이 외환보유액만 축나고 있다.

다른 딜러는 “당국이 환율을 잡으려면 달러를 더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환율 추가 상승을 기대하고 달러를 팔지 않고 있는 수출업체들이 언제 달러를 내놓느냐가 이번 환율 전투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 홍승모 차장은 “한은과 기획재정부가 공조를 확실히 해 기선제압에 성공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특정 수준을 정해놓고 이를 지키기 위해 무리한 개입을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골병 드는 기업들=수출기업들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무역업체 H사 정모 대표는 “5개월 전 계약한 기계류가 들어왔는데 달러당 128원의 손해가 발생했지만 납품업체와는 이미 정산이 끝나 환차손을 그대로 껴안았다”고 말했다. 그는 “올 들어서만 5억원의 환차손이 발생해 직원들 월급도 밀렸다”며 “지금은 환율이 어떻게 될지 몰라 물품 주문을 거의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체 환 헤지(위험회피) 능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들은 더욱 힘겹다. 중소 섬유업체 A사 유모 사장은 “2005년께부터 원화가 계속 떨어져 지난해 말 930원에 맞춰 환변동보험에 가입했는데 3월 초부터 환율이 1000원대로 치솟으면서 달러당 100원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올해 환차손만 30억원 정도 될 것 같다”며 “연말까지 열심히 수출해도 이익은커녕 밑지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상렬·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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