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 생각은…

헌재 결정에 승복 않겠다는 건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지난 10일 한 TV 심야토론에서 각 정당의 선대위원장들이 모여 선거쟁점 사안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던 것을 보던 중 충격적인 대목을 접했다.

한나라당 선대위원장이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 내용이 어떠하든 각 정당은 이를 겸허히 수용하기로 선대위원장 간에라도 합의를 보자고 주장했다. 그러자 여당을 자처하는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국민의 70%가 반대하는 사안에 대해 헌재가 탄핵가결안을 통과시킨다는 것은 가정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 같은 주장은 찬탄.반탄의 선거쟁점화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발언했다.

이 말을 듣고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만약 헌재의 결정이 열린우리당의 뜻과 달리 탄핵가결안 수용 쪽으로 날 경우 열린우리당은 다시 국회 단상을 점거하고 '헌재 쿠데타'를 외치겠다는 말인가. 내 뜻과 다르면 여론을 불러일으켜 또다시 세력 확산에 나서겠다는 말인가.

지난 1년을 돌이켜 볼 때 대통령은 코드인사, 분당, 야당의 발목잡기 운운, 대선자금 전면 수사, 재신임 투표 고려, 10분의 1 발언, 열린우리당 지지 표명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기존 정치의 부패와 무능을 부각시키고 국민 간 갈등을 조장했다. 더 나아가 이제는 국회의 난장판 모습을 선거 이슈화함으로써 국회를 장악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생각이기 때문에 총선 후 열린우리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게 되면 결국 친노파 대 비노파로 분당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식의 발언을 열린우리당 인사(지금은 탈당했지만)가 공공연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

어차피 정당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권을 잡는 데 있다고 하지만 이제는 대통령도, 열린우리당도 심기일전해 달라졌으면 한다. 자신은 되돌아보지 않고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정치행태는 이제 그만 하길 바란다. 이는 어쩌면 가장 치졸한 네거티브 전략으로 보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행여 국민을 선동하는 듯한 언행도 삼가야겠다. 시스템 정치를 하겠다던 집권 초기의 초심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선과 악, 민주 대 반민주 등의 구호들로 민심을 왜곡하려는 유혹을 뿌리치기 바란다.

서민경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오로지 노무현 정권의 무능 때문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겠으나, 그렇다고 경제가 다시 살아날 기미조차 피부로 느껴지지 않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모든 책임을 과거 정권에만 돌릴 수 없다.

지금은 우리 사회 각 세력이 목소리를 높이며 자기 실익 챙기기에만 매달릴 때가 결코 아니다.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이른 시일 안에 각 세력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국민화합을 도모해 국민경제 부흥에 모두가 헌신할 수 있도록 역량을 총결집해 주기 바란다.

이민세 숭의여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