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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현장 관찰] 11. 충청권 표심 흐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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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유재일 교수 대전대 정외과

"표 달라는 사람도 없고, 선거 얘기하는 사람도 없고. 그렇지만 뭔가 바뀌긴 바뀔 것 같네유."

지난 9일 대전시 중구 은행동에서 20여년간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50대 후반 여주인의 선거 촌평이다. 선거운동이 시작된 뒤 각 당 지도부가 한두 차례 내려오긴 했지만 충청권의 열기는 좀처럼 달아오르지 않는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지역 유권자의 기질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권자의 마음을 한 꺼풀 두 꺼풀 벗겨 들어가면 다른 지역에서 느낄 수 없는 강렬한 이슈가 그들을 흔들고 있다. '신행정수도 건설'이라는 변수다.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40대 중반의 남성. 그는"대통령이 탄핵되면 행정수도 건설도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행정수도 건설 이슈는 지난 대선 때도 위력을 발휘했다.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득표율은 대전 39%대55%, 충남 41%대50%, 충북 42%대50%였다. 두 후보의 득표 차(57만표) 중 25만표가 충청권 유권자에게서 나왔다.

대선 결과로 보면 유권자들은 '연고투표'대신 '이익투표'를 한 셈이다. 이번 총선에서 이익투표 행태는 어느 정도 나타날까. 충청권 선거의 관전 포인트다. 행정수도 건설 현안의 파급력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도 앞장서 찬성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이 수도 이전 이슈의 열매를 독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에선 곤혹스러운 면이 있다. 한나라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서울(이명박).경기도(손학규) 등 수도권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행정수도 건설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강창희(57.대전 중구)후보는 TV토론회에서 "나를 6선으로 당선시켜 주면 한나라당 사람들을 설득해 수도 이전을 반드시 관철하겠다"고 강조했다. '충청권 지역정당'임을 숨기지 않는 자민련도 행정수도 건설에 적극적이다. 한 관계자는"우리가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고 해서 행정수도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행정수도가 완성되려면 자민련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탄핵과 행정수도는 별개라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지난해부터 행정수도 이슈를 저변에서 확산시키고 있다. 당의 관계자는 "탄핵 역풍이 다른 지역에서는 '박근혜 효과''노풍(老風)' 등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충청권에선 행정수도 정책 이슈가 워낙 견고해 열린우리당 우위가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열린우리당 권선택(49.대전 중구)후보는 "행정수도 건설은 참여정부 국가 균형발전 전략의 핵심 사업이다. 대통령과 집권당을 밀어 달라. 공약대로 한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행정수도 문제가 여야 격돌의 현장에선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로 인한 정책 공방전도 별로 없다. 구전(口傳)홍보와 비공식 유권자 접촉 차원에서 소곤소곤 이뤄지고 있다. 행정수도 이슈가 '지역 이기주의'의 한 형태임을 서로 알기 때문일 것이다.

행정수도라는 메가톤급 정책 이슈의 등장으로 '지역 연고투표'는 사라질 것 같다. 그 빈 자리를 '지역 이익투표'가 메울 가능성이 있다. 충청권 표밭의 고공엔 탄핵.박근혜.노풍 변수가 떠다니고 있지만 저변엔 행정수도 이슈가 흐르고 있다. 잠복했지만 드러난 어떤 것보다 강한 변수, 그것이 지역이익 이슈인 행정수도 건설이다.

유재일 교수 대전대 정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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