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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美.日 新안보체제와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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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는 일본이 또 다시 대륙침략을 꾀할 것이라는 뿌리깊은 망령에 시달려왔다.최근 일본의 움직임을 보고 이러한 망령이 적중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일본은 최근냉전(冷戰)종결.소련해체 등 전략환경의 근본적인 변화를 반영해방위정책의 근간이 돼온 「방위계획의 대강」과 「미-일(美-日)안보체제」를 수정및 재정의함으로써 지난 50년간 지켜온 방위정책의 기본방향을 수정하려 하고 있다.
새로운 일본의 방위정책은 일부군축(軍縮) 및 투명성 제고 노력 등 긍정적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국익에 의거해 제약없이 자위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대외(對外)군사활동 영역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특히 올해 4월에 발표될새 「미-일안보공동선언」은 일본방위에 국한돼 오던 미-일안보체제의 영역을 아태(亞太)지역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해 자위대의 일본영역밖 활동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왜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유도하는 것일까.단지 미국이 여력(餘力)이 없어서 믿을 만한 일본에 동아시아 지역을맡기는 것일까.결코 그렇지 않다.이번 미-일공동선언은 일본이 독자노선에 입각한 신방위계획을 추진하는 것에 미 국이 제동을 거는 형태로 나오게 된 것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즉 미국은 냉전종결 이후 일본의 동맹이탈과 독자노선 가능성을 방지하고 미-일안보체제의 영역확대를 통해 증대되는 일본의 힘을 미-일동맹의 틀 속에서 소화시키려는 의도를 갖 고 있는 것이다.또한 미국은 미-일동맹 영역확대를 통해 급성장한 중국을 견제하고 싶을것이다. 결국 이번 선언은 미국이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막는 병마개 역할을 계속하겠다는 의지표명으로 볼 수 있다.그러나 미-일간의 역학관계 변화는 일본이 언제까지 미국의 우산아래에 있을것인지 의문이 들게 한다.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의 일각에서는 중국과 연합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견제해야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미-일동맹의 영역확대와 관련,우리는 최근 왜 중국이 이례적으로 장쩌민(江澤民)주석,리펑(李鵬)총리,차오스(喬石)전인대상무위원장 등 최고 지도 자들을 모두 방한시키는 등 한국을 중시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인식해야 한다.한국의 선택은 동아시아 4강(强)의 편가르기에 편승해서는안된다.21세기 중-일(中-日)경쟁시대에 있어 일본과 중국 중어느 한쪽의 편이 돼 다른 쪽을 견제하겠다는 정책은 우리 운신의 폭만 좁힐 뿐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일(韓-日)간의 인적.물적교류는 엄청난 수준에 달해 일본은 물론 우리의 번영과 평화에 있어 매우 긴요한 요소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감정과는 상반되겠지만 일본을 가상적국화(假想敵國化)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난센스일 것 이다.
여태까지 한-일간의 안보관계는 어디까지나 미국을 중재로 하는관계였으며,미국이 하라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미국의 대일(對日)통제력이 약화되고 있고,당장 일본의신방위정책에 의해 한반도 주변의 자위대활동이 증가될 것이 우려된다. 한국은 감정적 대응보다 차분히,그리고 현실적으로 일본의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우리의 실리를 극대화하는 정책을 취해야 한다.미국이 일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보험기간중 무엇보다 일본의 증대되는 힘이 우리의 국 익에 나쁜영향을 주지 않도록 일본과의 새로운 안보관계를 설정하는 일은 21세기를 향한 우리의 대외정책상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리의 대일정책은 보다 직접적인 안보협력관계를 모색하는 한편,다자간의 안보체제 틀 안에서 일본의 증대되는 힘과 역할을 소화시키는 정책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尹德敏 외교안보연구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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