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트렌드>리메이크-영화.음악.TV 거센 복고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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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앞을 향해 달리다 지칠때 마다 되돌아보는 회귀의 포즈.복고풍은 계절풍처럼 주기적으로 우리를 찾아온다.그 바람을 등에 업고되돌아보는 것은 향수일까 소리없는 반성일까.
지금 세계는 거꾸로 부는 바람이 거세다.영화.음악등 대중문화상품은 물론 패션과 같은 일상의 영역까지 복고의 바람이 불고 있다. 파리.밀라노등 세계 패션1번가의 올 춘하복 패션은 50,60년대의 청순미를 강조한 오드리 헵번식 패션이 주류로 등장했다.영화쪽에선 고전 문예물이 때 아닌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샬럿 브론티의 『제인 에어』,너새니얼 호손의 『주 홍글씨』가 개봉된데 이어 19세기초 영국 여류작가 제인 오스틴의 『설득』『지성과 감성』이 잇따라 영화화 됐다.
이 복고기류를 타고 대두한 가장 뚜렷한 문화적 현상이 바로 대중문화상품의 리메이크 붐이다.리메이크는 원작을 그대로 따르되부분적인 수정을 가하는 재창조 방식을 말한다.
리메이크 붐은 국내 대중문화계에서도 쉽게 읽어낼 수 있다.영화의 경우 최근 국내에 선보인 『크라잉 프리맨』『신불료정』『야반가성』『사브리나』등이 모두 리메이크한 작품이다.『크라잉 프리맨』은 홍콩 액션멜로물을,『신불료정』은 60년대 홍콩 멜로물 『불료정』을,『야반가성』은 동명의 30년대 중국영화를,『사브리나』도 50년대 동명영화를 원작으로 했다.
가요도 지난해부터 리메이크 곡이 갑자기 쏟아지고 있다.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조관우와 김광석.『님은 먼곳에』『당신은 모르실거야』등 주로 70년대 여가수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조관우의 2집앨범은 현재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다.또 포크송 의 마지막 세대로 불렸던 김광석의 리메이크 앨범도 포그송 팬들에게 꾸준한사랑을 받고 있다.
뿐만아니라 신세대 댄스그룹 사이에서조차 앨범에 한두곡의 리메이크 곡을 수록하는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그룹 터보의 앨범에수록된 『검은고양이 네로』는 현재 타이틀 곡보다 더 인기를 얻고 있다.
공연물인 연극에서는 리메이크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지만유사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굳세어라 금순아』『사랑에 속고돈에 울고』등 과거 한때 유행했다 맥이 끊어지다시피 했던 악극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같은 리메이크 붐은 국내의 정서적 경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현재 국내엔 「순정」에 대한 대중적 수요가 크다.수입되는 리메이크 외화는 거의 로미오와 줄리엣식의 순정 멜로물이며 『은행나무침대』『러브스토리』『겨울나그네』등 같은 경향의 국산영화도 속속 제작되고 있다.
또 소설에서도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이 불황서점가에 밀리언셀러로 등장했으며 20,30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조관우의 리메이크 곡도 단순하게 순정을 노래한 가사가 대부분이다. 리메이크는 이런 대중적 정서를 공략하는데 제격인 표현방식이다.순정을 다룬 다양한 원작들중에서 하나를 골라 적당히 포장만하면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거기다 부분적이나마 원작을 체험한 세대까지 소비층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이점도 있다.한마디로 현재의 문화적 경향으로 볼때 리메이크는 상품생산과 마케팅 양면에서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전략이다.
이 때문인지 흥행영화의 제국 할리우드에선 지금 인기TV프로의리메이크 작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이미 『내사랑 지니』(원제 I Dream of Jeannie)를 제작중인 컬럼비아 영화사는 지난달 중순 『아내는 요술쟁이』(원제:Bew itched)도 리메이크 하겠다고 발표했다.현재 제작중이거나 제작예정인 프로는 『사랑의 유람선』(원제 Love Boat),『도망자』(원제 The Fugitive),『제5전선』(원제 Misson Impossible)등 15편 정도.작 품 하나하나가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TV로 이미 방영된 인기프로들이다.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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