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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인 영어체험교실 “Oh~ n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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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 시내 S초등학교 영어체험교실에서 학생 두 명이 교실 뒤편에 설치된 버스정류장 그림이 있는 상황판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상). 미국 거리 사진으로 만들어진 이 상황판은 대화 문구와 사진이 고정돼 있어 교과과정이 바뀌면 상황판도 통째로 바꿔야 한다. 아래 사진은 학생들이 외화를 보며 영어특별활동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 [사진=민동기 기자]

4일 오후 서울 시내 S초등학교. 5000만원을 들여 5월 말 문을 연 영어전용(체험)교실로 들어서는 복도 입구에는 무지개 색깔로 된 ‘English Village’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복도에는 세계지도와 함께 화려한 색상의 동물 그림과 동물 영어 철자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교실 앞쪽에는 60인치 평면TV도 있었다. 교실 뒤에는 뉴욕 지하철 노선도, 미국 도시 거리, 인천공항 출국표 등 이국적 사진으로 꾸며진 상황판이 있어 외국에 온 느낌이었다. 김모(6학년)양은 “교실이 깔끔해져 좋지만 수업 내용은 바뀐 게 없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간 서울 B중학교 영어전용교실. 2학년 학생 30여 명이 원어민 강사와 영어단어 맞히기 게임을 하고 있다. 강사가 문제를 내자 학생들은 조별로 정답을 적어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Here, here. we got the answer(여기요, 여기요. 우리가 맞혔어요).” 권모군은 “일주일에 세 번인 영어수업 중 한 번을 여기서 하는데 단어 맞히기 게임은 인테리어가 바뀌기 전 예전 교실에서도 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실은 지난달 문을 열었다. 창문에는 영국 2층 버스와 뉴욕 시내 거리를 담은 대형 사진으로 만들어진 블라인드가 커튼 대신 걸려 있다. 학교 측은 교실 두 개를 리모델링하는 데 5000만원을 썼다.

영어 공교육 강화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는 올해 1000억원을 ‘영어전용교실 만들기’에 쏟아 붓고 있다. 영어와 친화적인 교육환경을 만든다는 취지다. 하지만 교육 내용 개선이나 콘텐트 강화보다 교실 인테리어를 이국적으로 꾸미는 데만 돈을 쓰고 있어 ‘속빈 강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너도나도 영어교실 만들기=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에 73억원씩 1168억원을 영어전용교실 설치에 지원했다. 일부 시·도에서는 교과부 지원금에 자체 예산을 얹어 영어전용교실 설치에 나섰다. 경기도교육청은 학교당 1억원씩 198억원을 들여 올해 안에 198개 학교에 영어전용교실을 설치키로 했다. 서울시교육청도 연말까지 278개 학교에 5000만원씩 139억원을 쓸 계획이다.

영어전용교실 인테리어 업체들은 ‘대박’이 났다. K사 관계자는 “지난해 10억원이던 매출이 올해는 100억원대로 늘었다”며 “전국에서 문의 전화가 몰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콘텐트 개발 시급=예산을 쏟아 붓고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미흡하다. 일부 책이나 DVD·사전 같은 교재 외에는 교육 프로그램 콘텐트가 갖춰져 있지 않다. 서울 S초등 박모(여) 영어교사는 “아이들의 동기 유발이 되고 시설이 쾌적해졌지만 이를 활용할 교육방법 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S초등 벽화와 상황판은 고정식이다. 교과 과정이 바뀌면 다른 걸로 간편하게 교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상황판을 뜯어내거나 벽화를 다시 그려야 한다. 시설 설치 기준이 없는 것이다. Y초등 영어교실도 마찬가지다. 빨간 공중전화 부스, 경찰 제복이 걸려 있는 경찰서, 실제 약 상자가 전시된 약국 등 상황별 부스가 있지만 고정식이다.

영어교실 설치비용은 학교 규모나 상황에 관계없이 지역교육청이 일괄 지원한다. 서울 B중은 5000만원을 받아 책걸상·벽·바닥·창문 등을 바꾸는 데 대부분을 썼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시범사업이라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며 “새로운 수업법을 개발하고 적절한 예산 지원 방법을 찾아 단계적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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