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만 바꿔도 젊어질 수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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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 15면

내게 ‘보타이(나비 넥타이)’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인물은 김동길 교수와 심형래 감독이다. 듣는 순간 미소 짓는 이들이 있다면 같은 이유일 것이다. 개그맨들의 성대모사 대상이 될 정도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김 교수의 캐릭터, 뒤뚱거리는 펭귄 복장 위에 보타이를 매치했던 심 감독의 희극적 뉘앙스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내게 보타이는 ‘희극적 아이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윈스턴 처칠, 마크 트웨인, 가르시아 로르카, 숀 코너리가 제아무리 멋스러운 보타이 룩을 선보였다 해도 머릿속에 총알처럼 박힌 고정관념을 희석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그런 고정관념이 슬슬 무너지는 중이다. 왕벚나무 꽃잎 날리듯 보타이를 맨 남자들이 도처에 출몰했던 게 가장 큰 이유다. 온갖 오락 프로그램과 드라마에 훤칠한 꽃미남들이 보타이를 매고 등장했고, 스포츠 뉴스 진행자 몇몇도 거기에 가세했다.

청담동과 압구정동 거리에서 목격한 보타이 맨도 하나 둘이 아니다. 란스미어의 브랜드 매니저 박성준은 그런 상황을 두고 ‘일단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남자들의 옷차림에 위트를 얹어 주고 한편으론 귀엽다는 말도 덧붙인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복기하면 김동길 교수에게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친근감을 느꼈던 건 그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아쉬운 게 있다면 그런 보타이 맨이 대부분 젊은 남자라는 사실이다. 요즘 대한민국 20대는 패션 스타일리스트들 사이에서도 ‘옷 예쁘게 입기’로 회자되는 수준이다. 그 와중에 뭔들 시도하지 못할까. 순백색 셔츠 위에 나비처럼 내려앉은 보타이만큼 다양한 표정을 안겨주는 액세서리도 없을 테니 늦은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트렌드는 트렌드일 뿐. 창궐하던 나비의 날갯짓이 슬슬 자취를 감추는 건 단순히 계절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트렌드의 끝물에서 슬쩍 이런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다. 30, 40대라고 못할 게 뭐 있어.

어차피 진짜 스타일은 트렌드와는 살짝 거리를 두는 법이다. 남자의 전통적 패션 아이템들이 지상에 착지하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다 사라지는 건 트렌드처럼 왔다가 트렌드처럼 사라지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권하건대, 이럴 때 보타이같이 유니크한 아이템 하나쯤은 챙겨둘 필요가 있다. 그 선택이 청춘을 넘긴 남자들의 스타일 외연을 확장시켜 줄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또 한 가지. 언제까지 ‘꼰대 스타일’ 소리만 듣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글쓴이 문일완씨는 국내 최초 30대 남자를 위한 패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루엘 luel』의 편집장으로 남자의 패션과 스타일링 룰에 대한 기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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