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살로메’ 알몸 연기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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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13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드레스 리허설을 지켜보던 총감독 조셉 볼프는 하우스 매니저 짐 네이플스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출입문을 모두 걸어 잠그세요. 극장 밖으로 아무도 못 나가게 말입니다.”

리하트르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 리허설 도중 핀란드 출신의 소프라노 카리타 마틸라가 화가 나서 퇴장해 버렸다. 살로메 역을 맡은 마틸라는 아리아 ‘일곱 베일의 춤’을 부르고 있었다. 헤롯왕 앞에서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간청하며 옷을 하나씩 벗으면서 추는 춤이다. 노래가 끝나자 마틸라는 마지막 베일을 벗어 던지고 알몸이 되었다. 그 와중에 카메라 셔터 소리를 들은 것이다. 셔터 소리의 주인공은 뉴욕 타임스에서 드레스 리허설을 취재하러 온 여자 사진기자였다. 볼프는 극장을 막 나서려던 사진기자를 붙잡아 세웠다.

“카메라 주기 전에는 극장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갑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카메라 달란 말이에요.”
“오늘 뉴욕 타임스에서 취재 온 것 아시잖아요.”

볼프는 사진기자가 찍은 사진을 모두 보여 달라고 했다. 그중에는 마틸라가 알몸으로 노래하는 장면이 있었다. 볼프는 사진기자로부터 이 장면을 지우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그를 돌려보냈다. 뉴욕 타임스에 마틸라의 누드 사진이 실린다면 사진기자가 톡톡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다행히 신문에는 누드 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3월 15일 최종 드레스 리허설 때는 뉴욕 타임스는 물론 다른 신문ㆍ잡지에서도 취재를 나왔다. 볼프는 기자들에게 마틸라가 누드 차림으로 있는 2∼3초 동안에는 사진을 절대 찍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위르겐 플림의 현대식 버전 연출로 펼쳐진 공연 실황은 녹화돼 라디오와 TV로 동시 방송될 예정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볼프는 마틸라를 다시 불렀다. 녹화 테이프를 보여주면서 카메라를 여러 대 설치했으니 정면에서 찍은 누드 장면은 얼마든지 편집할 수 있다며 본인 의향을 물어봤다. 그러자 마틸라는 이렇게 대답했다.“저는 제 몸이 부끄럽지 않아요. 전혀 문제 없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연극 ‘살로메’를 오페라화한 이 작품에서 살로메 역으로 출연하는 대부분의 소프라노들은 알몸 대신에 피부색의 바디 스타킹을 입는다. 멀리서 보면 벗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옷을 입은 셈이다. 벗더라도 무대 뒤에서 실루엣 역광을 쏘아 객석에서 가슴이나 아랫도리가 보이지 않도록 한다. 2004년 메트에서 ‘살로메’에 출연한 소프라노 드보라 보이트는 살색의 전신 스타킹을 입었다. 무대 조명을 어둡게 한 다음 누드 장면에서만 대역(代役)을 투입하는 경우도 있다.

1986년 런던 로열 오페라에서 공연된 ‘살로메’에서도 소프라노 마리아 에윙은 전라로 출연했다. 연출은 당시 그녀의 남편이었던 피터 홀이 맡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벗고 춤추는 것은 내 아이디어였다. 살로메의 절망과 동경, 자아를 발견하는 순간의 진실을 표현하는 데 중요한 모티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8년 2월 런던 로열 오페라에서 데비이드 맥비카의 연출로 상연된‘살로메’의 공연 일정을 알리는 웹사이트에는 “이 오페라에는 누드와 폭력 장면이 나옵니다”라는 경고 문구가 올랐다. 비록 뒤로 돌아서서 은밀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지만 근육질의 남성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무대에 등장했다. 이 남자는 세례요한의 목을 치는 사형 집행수다.

이처럼 오페라에서 조역이나 무용수들이 간혹 옷을 벗는 경우는 있지만 주역 가수가 전라로 출연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1990∼2006년 메트 총감독을 지낸 볼프는 회고록『지상에서 가장 힘든 쇼』에서 메트 관객들에게 최근 몇 년간 가장 인상 깊은 무대를 꼽으라고 설문조사를 한다면 단연 마틸라의 ‘살로메’가 1위를 할 것이라고 썼다. 누드 출연 때문이 아니라 관객을 압도하는 노래와 연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중앙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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