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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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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한여름 밤의 바람은 참 좋아라~.” 정태춘의 노래 가운데 이런 노랫말을 가진 것이 있다. 사실 너무 오래전에 들어서 제목도, 노랫말도 정확하진 않지만 해마다 여름이면 나는 이 구절을 흥얼거린다.

물론 노래의 전체 컨셉트는 정태춘의 다른 노래들이 그러하듯 감상적이진 않지만, 이 부분만 똑 떼어서 노랫말 그대로의 이미지만 떠올렸을 때 나는 기분이 참 좋아진다. 여러분도 알고 있지 않을까? 실제로 한여름 밤의 바람이 참 시원하고 가슴 설레게 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면 나는 한여름 밤의 정취를 느끼느라 밤거리에서 많이 노닌다. 물론 대부분 포장마차 또는 야외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는 게 전부지만.

그리고 며칠 전, 나는 한여름 밤의 또 다른 묘미를 경험했다. 밤길 산책. 오랜만에 일찍 퇴근한 남편과 나는 집에서 맹맹하게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최근 들어 나이살이 찌려는지 밤마다 입이 심심해지곤 하는데, 그날따라 집에는 군것질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다른 때 같으면 전화 한 통화로 배달을 시켰을 터인데 남편이 마트에 가서 사 올 것을 제안했다. 나 역시 이날은 “귀찮아. 혼자 가서 사 와” 이 말 대신 남편을 따라 나섰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단지도 크고 조성된 공원의 나무들도 제법 울창하다. 밤 10시가 넘어 인적이 드문 공원길을 걸어가자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마트까지 가서 군것질거리를 사고 다시 집에 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한 시간이 채 못 됐지만, 나는 참 오랜만에 산책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별 대단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남편도 비슷한 기분인 것 같았다.

중앙일보 2.0 추진단이 오픈한 워크홀릭 사이트(walkholic.com)를 보면 ‘걷기’가 우리 몸에 얼마나 좋은지 잘 소개돼 있다. 하루 30분만 걸어도 다이어트는 물론 몸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져서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부부가 함께 걷는다’는 의미까지 추가되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부부가 주말 밤을 참 심심하게 보낸다. 우리 부부의 경우는 함께 볼 만한 프로그램이 없어 TV 리모컨 쟁탈을 부리기 일쑤다(왜 남자들은 드라마를 보지 않을까?). 그러다 한 사람이 승리하면 패자는 다른 방에 가서 인터넷 게임을 한다. 결국 부부가 같이 즐기는 시간이 참 없다. 그런데 오늘, 오랜만에 밤길 산책의 즐거움을 ‘함께’ 느낀 것이다.

황지우 시인의 ‘늙어가는 아내에게’라는 시가 있다.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아 그냥, 그래, 그냥 살아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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