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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업계, 공장 소리가 멎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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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산업계에 ‘3차 오일쇼크’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유가가 지난달 27일 배럴당 140달러(미국 WTI 기준)를 넘어선 지 1주일 만에 145달러까지 넘어서면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달러대를 돌파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연평균 유가가 150달러에 달하면 1970년대 오일쇼크에 버금가는 충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석유화학·항공운송·자동차 등 유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업체들은 “이젠 ‘생존게임’ 단계에 들어섰다”고 호소하고 있다.

삼성석유화학은 지난달 고순도텔레프탈산(TPA) 울산 1공장(연산 20만t)의 가동을 중단했다. 삼남석유화학과 케이피케미칼도 일부 TPA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거나 감산에 들어갔다. 삼성석유화학 관계자는 “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데 제품 값은 그만큼 올리지 못했다. 공장을 언제 다시 가동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유화업계에선 지난해부터 대표 상품인 BTX(벤젠·톨루엔·자일렌)·에틸렌·합성수지(PS)의 생산을 크게 줄였다. 그런데도 유가가 계속 오르자 최근 TPA의 생산까지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유화 업종은 생산비 중 원재료인 나프타 비중이 76%에 달해 고유가에 취약한 산업이다.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사업장별 가동률이 80~90%로 떨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의 김평중 연구조사본부장은 “150달러대가 되면 공장가동률은 70%대로 떨어질 것”이라며 “각종 원가 절감 기술을 도입하고 있지만 요즘 상황에선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유화설비는 가동률 70%면 최저 수준으로 친다. 그 이하로 떨어지면 가동을 멈춰야 한다.

항공업계는 국내외 노선 감편과 운휴에 이어 여객기 무게를 줄이기 위해 탑재 음료까지 줄이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환율 상승까지 겹쳐 대한항공의 경우 올 한 해 조(兆) 단위의 적자를 우려한다. 이 회사는 이미 1분기에 3000억원대의 순손실을 기록해 국내외 3개 노선 감편과 2개 노선 운휴에 들어갔다. 또 일부 손님이 적은 노선은 좀 더 작은 항공기로 바꾸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임직원 임금을 동결해 532억원의 인건비를 절감한 데 이어 일반 운영비를 10%씩 절약하는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연료 절감을 위해 기내에 탑재되는 카트를 27.3㎏짜리에서 20㎏짜리로 교체하고 있다. 기내 책자의 크기를 줄이고 재질도 가벼운 것으로 바꾸고 있다. 두 항공사 모두 비행거리를 최소화하는 항로를 운영 중이다. 착륙 후 건물에 여객기를 붙이기까지 10여 분 동안 일부 엔진을 끄도록 했다.

자동차 내수시장도 뛰는 기름값에 위축되는 모습이다. 지난달 국산차 판매 실적은 전년 같은 달보다 7% 줄었다. 승승장구하던 수입차 판매도 제동이 걸리는 모습이다. 4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차 신규 등록 대수는 5월보다 7.9% 줄어든 5580대였다. 고유가에 취약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주력 제품인 쌍용자동차는 5월 중순부터 지난 2일까지 경기도 평택공장 조립 1라인의 감산을 단행했다. 국산차 업계는 유류비 지원 명목으로 값을 수백만원씩 깎아주거나 특별할부를 하는 등 판매 증진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수입차 업계도 여름철 휴가용 여행상품권을 증정하거나 저금리 할부금융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혜택을 내놓고 판촉전에 돌입했다.

중소업계는 더 죽을 맛이다. 합성수지 값이 지난해 대비 80%, 연초 대비 50% 이상 뛰면서 비닐봉투 등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이 “한계상황에 달했다”고 호소하고 있다.

양선희·심재우·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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