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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학 칼럼

분자영상과 우주탐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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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인간의 하늘에 대한 동경과 관찰은 인류 문명의 시작과 같이한다.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점성술이나 달력 작성을 위해 인간은 천체를 관찰해 왔다. 17세기 망원경이 발명되면서 인류는 보다 과학적으로 우주를 관찰하게 되었고, 우주로부터 오는 방사선이나 전파를 측정하여 우주의 구조·기원·진화 등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의 인체에 대한 동경도 이와 유사하다. 인간의 몸을 ‘소우주(小宇宙·microcosmos)’라 칭하며 인체의 신비를 밝히고자 노력해 왔다. 현미경이 발명되면서 인체의 기본 구조가 우주의 천체와 같이 세포 단위로 구성돼 있음을 알게 되었고 X선·전자현미경 등의 발전으로 생명 근원인 DNA 구조를 구명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의생명과학은 세포 또는 분자 수준의 구조나 기능을 구명하는 분자세포생물학적 방법에 집중하고 있다. 인간의 탄생, 유전적 경향, 성장, 질병, 노화 및 사망에 이르는 일련의 생물학적 과정이 특정 유전자나 단백질의 발현에 따르는 ‘생체 내 신호전달체계’에 의한 것임이 하나씩 퍼즐처럼 밝혀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 고유의 특성으로 여겨지던 사고·감정·행동양상 등도 실제로는 뇌세포 간의 신경전달물질을 매개로 한 화학적 반응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다. 이제 ‘마음의 병’이라고 여겨지던 우울증·사고장애·행동장애 등의 정신과 질환들도 약물로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미래 첨단의학은 질병의 ‘표적’이 되는 분자를 찾아내 진단하고 치료하는 ‘분자영상, 분자치료’의 시대가 될 것이다.

후쿠이대학 후지바야시 교수는 분자영상이란 ‘인체라는 소우주를 바라보는 천체망원경’이라고 하였다. 인류는 20세기 들어 X선·동위원소·초음파 등을 이용해 인체 내부를 관찰할 수 있었다. CT와 MRI의 등장으로 3차원 영상을 얻게 되었고, PET와 광학영상법의 등장으로 분자영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천문학자들이 우주를 망원경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직접 우주선을 보내 탐색하고 신호를 받아 천체를 관찰하듯, 핵의학자들도 1950년대부터 이와 같은 시도를 하였다. 즉 방사성 옥소를 투여한 후 갑상선에 모이면 이로부터 감마선 신호를 받아 갑상선의 모양, 호르몬 생산과정, 기능 등을 관찰할 수 있었다. 간에도 간 대사물질에 동위원소를 표지해 투여한 뒤 신호를 받아 간의 모양 및 대사를 관찰하고, 계속해서 담낭·담도·소장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담낭기능 및 담도폐쇄 유무를 관찰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의학자들은 인체의 체내 현상을 나타내는 ‘표적 분자 추적자’에 방사성동위원소·형광물질·발광물질·MR조영제 등을 ‘표지’하여 인체에 주입한 후 신호가 오길 기다린다. 마치 우주선 보이저호가 행성들을 탐사한 영상을 지구에 보내듯, 추적자에서 보내오는 감마선·형광·빛·자기공명(MR) 등의 신호를 디지털화하여, 살아있는 인체 분자 내의 현상을 컬러 영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형광과 빛의 신호는 투과력이 떨어지고, MR신호는 민감도가 떨어져 아직은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에 반해 감마선을 감지하는 핵의학적 PET 영상은 인체 깊은 곳에서도 다양한 분자영상을 보여줄 수 있다. 분자영상기술은 암뿐만 아니라 치매·파킨슨병 등과 같이 조직검사를 직접 하기 어려운 난치성 뇌질환에도 매우 중요한 의료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어릴 적 한밤중에 일어나 은하수를 본 기억이 난다. 우리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분자들도 밤하늘의 은하수를 이루는 별들처럼 희미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를 우리에게 끊임없이 보내고 있다. 그 신호 속에는 인간의 생로병사에 관련된 많은 정보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영화 ‘딥 임팩트’처럼 어느날 갑자기 소행성의 지구 돌진으로 인류 몰살의 위기가 닥쳐오듯 암 덩어리가 커져 우리 생명을 위협하기 전에, 암유발 분자물질을 세밀히 관찰해 이를 예방·치료해야겠다. 내 우주 속으로 분자영상의 보이저호를 띄워보자.

김종순 한국원자력의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