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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 기운 누르려 충무공 동상 세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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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서울 세종로에 있는 충무공 동상이 지금 자리에 그대로 남는다. 대신 중앙분리대에 심어진 큰 은행나무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

이종상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은 9일 "서울의 대표적인 기념물이라는 점을 감안해 세종로의 이순신 동상 이전계획을 백지화했다"고 밝혔다.

시는 지난 2월 광화문~세종로 네거리의 광장 조성 계획을 발표한 뒤 충무공 동상을 광화문 열린마당이나 충무공 탄생지인 필동 부근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1968년 세워진 충무공 동상은 조각가 고 김세중씨의 작품으로, 서울 한복판에 세워져 군사정권의 잔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시가 과거 역사와 동상 설치 배경을 추적하면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조선시대 서울의 중심거리는 광화문~광교~남대문 길이었고, 지금의 광화문~세종로~태평로~남대문 길은 용산에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비상시에 경복궁에 신속히 이동할 수 있도록 새로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태평로.세종로는 서울역이 커지면서 본격적으로 확장됐고, 일제는 일반인들이 경복궁을 보기 어렵게 도로 가운데에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서울시 조사결과 동상이 설립될 당시 세종로에는 세종대왕상을 세우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풍수지리학자들이 "세종로와 태평로가 뻥 뚫려 있어 남쪽 일본의 기운이 너무 강하게 들어오게 된다. 이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애국선열 조상(彫像)건립위원회'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조선왕조의 도로 중심축을 복원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거부한 뒤 "대신 세종로 네거리에 일본이 가장 무서워할 인물의 동상을 세우라"고 지시해 충무공 동상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이번 서울시의 동상 이전 백지화 결정에는 지난 한달 동안 인터넷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305명 중 266명이 동상 이전을 반대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세종로 중앙분리대의 은행나무들은 딴 곳으로 옮겨진다.

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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