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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주화파’ 최명길 재조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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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촛불 시위로 온 나라가 난타전이다. 무언가 가슴의 응어리를 뻥 뚫어줄, 시원한 결과가 나오면 좋으련만 한국 협상단의 자세는 웬지 미지근하다. 국운을 좌우할만한 엄혹한 시기, 과연 검역주권을 부르짖으며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오는 용기가 필요할까, 아니면 훗날을 기약하며 최대한의 성과를 뽑아내는 노련함이 절실할까.

외교 문제로 시국이 어수선한 요즘, 조선시대 학자 지천(遲川) 최명길(1586∼1647)에 대한 조명이 활발한 것은 시점상 절묘한 일이라 하겠다. 그는 병자호란 시기 청과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하는 척화파와 일정하게 선을 긋고, 현실론을 택한 인물이다.

그가 17세기에 남긴 문집인 『지천집』을 보강한 증보역주판 『지천선생집』이 최근 발간됐다. 『지천선생집』엔 기존 19권의 문집 이외에 최명길이 정치적 의견을 달리했던 척화파와 나누었던 서간문, 명나라에 보냈던 공식 문서, 또한 경학에 대한 연구 등 총 8권의 내용이 새롭게 발굴돼 포함됐다. 그야말로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최명길의 면모가 총망라됐다고 볼 수 있다. 고려대 한문학과 심경호 교수 등이 5년간의 작업 끝에 증보판을 낸 것이다. 이를 기념해 30일 ‘지천 최명길 사상의 재조명’이란 이름의 학술 심포지엄도 열렸다. 사실 병자호란 이후 조선 후기에도 주화파의 거두인 최명길에 대한 평가는 인색했다. 그러나 이번 증보판에선 양명학을 한국에 도입한 최명길의 철학적 사상에 초점을 맞췄다.

1636년 12월14일, 청군의 선봉이 이미 양철평(현재의 녹번동 부근)까지 들이닥쳤던 상황에서 최명길은 적진으로 가 청나라 장군 마부대와 담판을 벌였다.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계략을 꾸민 것이다. 그는 어떠한 명분이나 현실보다도 늘 “조선의 신하는 조선의 사직과 백성을 우선 위하여야 한다”는 주체적 사상을 난국 타개의 제1 원리로 삼았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실용주의’가 강조되는 현시기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심경호 교수는 “현실주의자는 단순한 상황 모면이 아닌, 더 깊고 엄정한 자기 성찰과 뿌리가 있어야 강한 울림을 갖게 한다. 최명길 선생은 바로 ‘철학이 있는 실용’이 무엇인가를 적확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전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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