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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더 판타스틱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8호 04면

박찬경(43)씨는 사진기자에게 “공무원 스타일로 찍어 주세요”라고 말했다. ‘왜 하필 공무원일까’ 슬쩍 웃음이 났다. ‘신도안’이 상영되고 있는 서울 신사동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 만난 그는 공무원보다는 귀신 들린 사람처럼 보였다.

-‘신도안’에 ‘판타지 다큐멘터리’라 이름 붙인 까닭은.
“내용이 기록필름이면서도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아 다큐 형식을 판타지로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내 취향이 직설적인 묘사보다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 이 작업을 시작할 때 관심이 조선 사람의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찾아 드러내는 데 있었다.”

-자료 사진을 움직이는 영상으로 만들면서 다양한 기법을 썼는데.
“사진에 영혼을 불어넣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을 동원했다. 평면 이미지를 공간감 있는 풍경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다. 카메라가 들어가고 나오고 하면서 현실과 다른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를 만들었다. 흑백과 컬러를 오가는 순간적 효과, 죽어 있던 자료를 숨쉬는 현실과 연결시키는 필름 작업 등이 재미있었다. 앞으로 정적인 미술을 동적인 미술로 만드는 다양한 방법을 찾고 싶다. 그것이 나의 미래의 작품이 될 것이다.”

-음악이 이 작품에서 큰 구실을 했다.
“처음부터 장영규씨 외에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없었다. 친형인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 입힌 음악을 듣고 장영규씨만이 내 작품에 음악을 줄 수 있겠다 생각했다. 리얼리즘이 살아있으면서도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음악.”

-‘신도안’을 ‘21세기 민중미술’이라 칭했는데.
“1980년대에 활동했던 화가들의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조선 민중의 귀기 서린 모습을 담아낸 신학철과 민정기, 신화에 현실을 접목한 최민화 선배의 그림이 ‘신도안’의 영상 이곳저곳에 투사돼 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18세기 실학자들의 우주 판타지를 들여다보고 싶다. 한국인이 유달리 집착하는 묘지 문제도 다루고 싶다. 한국 미술가들은 구체적 소재를 다루면 촌스럽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구질구질한 현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미술이 다뤄야 할 재미있는 소재가 너무 많다. 관념이 오히려 문제다. 요즘 우리 주변을 둘러보라. 실제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정치가 더 판타스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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