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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형님들, 이번엔 일본서 뵙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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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10대 기사들이 세계바둑의 지형을 뒤흔드는 태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에선 '폭풍' 송태곤(18)6단이 파죽의 6연승을 거두며 중국리그를 휩쓸고 있다.

서울에선 '독사' 최철한(19)7단이 가공할 파워를 앞세워 일인자 이창호9단을 또다시 벼랑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창호9단에서 이세돌9단으로 이어질 듯한 일인자의 계보도 급작스럽게 혼미해졌다. 바로 이 시점에 도쿄(東京)에서는 후지쓰배 세계선수권전이 시작된다. 이곳의 스타는 또 누구일까. 바둑계도 이제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 한국 : 19세 '독사' 최철환 이창호 천적으로 부상

"이창호9단을 꺾어야 진정한 우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랭킹 1위 구리(古力)7단은 중국이 CSK배 단체전에서 한국을 꺾고 우승한 직후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은 지극히 옳다. 아직 중국에선 중요 승부에서 이창호를 꺾어본 기사가 없다. 적어도 중국의 관점에서 이창호는 무적이며 움직일 수 없는 태산이며 목표 1호다.

그런데 서울에선 최철한7단이란 19세 청년이 이창호를 잇따라 코너로 몰아넣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철한은 지난번 국수전에서 이창호와 맞붙어 3대2로 우승컵을 빼앗더니 현대자동차배 기성전에서도 1대1. 대회가 잠시 미뤄진 동안 이창호는 LG배 세계기왕전 우승컵을 따내며 컨디션 회복을 알렸다. 최철한도 이젠 어림없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난 6일 재개된 기성전 도전3국에서 이창호는 또다시 최철한에게 패배했다. 흑을 쥐면 더욱 무적이라는 이창호9단이 흑으로 불계패하고 말았다. 이 의미깊은 한판이 끝난 뒤 "최철한은 이창호에게 상극일지 모른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최철한의 기풍은 두텁고 강력하며 끈질긴 전투형이다.'독사'라는 별명 그대로다. 그런 최7단이 하도 틈을 안 주고 물고늘어지기 때문에 부동심의 극치라는 이창호조차 계속 급전에 휘말려 본연의 계산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무튼 최철한은 이창호9단과의 최근 8연전에서 5대3으로 리드하고 있고, 기성전에서도 한판만 더 이기면 타이틀을 빼앗게 된다.

*** 중국 : 18세 '폭풍' 송태곤 6연승 힘입어 팀우승

중국 산시(山西)성에 29개 팀이 모인 가운데 중국 을조리그가 시작된 것은 지난달 30일. 매스컴의 관심은 조훈현9단과 조한승7단을 스카우트해 초호화팀을 구성한 홍콩팀으로 쏠렸다. 그러나 홍콩팀은 첫판에 송태곤6단을 영입한 다롄(大連)팀에 무너졌다. 이후 송태곤은 내리 6연승을 거두며 소속팀의 리그 우승과 갑조리그 승격을 확정시켰다.

'폭풍'이란 별명 그대로 송태곤은 일순에 중국리그를 휩쓸어버린 것이다. 이제 대회장에 모인 카메라들은 포커스를 송태곤에게 맞추고 있다. 송태곤이 지난해 한국에서 조훈현9단을 꺾고 천원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만18세의 강자라는 소식과 함께 다롄팀이 숨은 진주를 들여왔다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송태곤은 지난해 신예대회를 포함, 국내 4관왕에 올랐고 후지쓰배에선 이창호9단을 격파하고 결승에 올랐다가 이세돌9단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2년까지만 해도 아직은 철부지로 비쳤던 신예기사가 2003년이 되자마자 정상을 향해 무서운 진격을 개시한 것이다. 그러나 하반기의 부진에다 박영훈.최철한.조혜연 등의 맹활약에 묻혀 송태곤이란 존재는 슬며시 잊혀졌다.

그 송태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멀리 중국의 산시성에서부터 말발굽소리 요란하게 축포를 쏘아올리며 그동안 기른 힘을 과시하고 있다. 현재 을조리그는 다롄팀만이 갑조 승격이 확정됐고, 나머지 한 자리를 놓고 홍콩.구이저우(貴州).항저우(杭州)팀 등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 일본 : 후지쓰배 2연패 이세돌 아우들 도전 막아낼까

모두들 도쿄로 모였다. 중국과 서울은 잠시 휴전상태다. 10일 후지쓰배 세계선수권전(우승상금 1천5백만엔)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대회는 재편돼 가는 세계바둑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우승권은 세개로 나뉜다. 이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한 이세돌9단과 최강 이창호9단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최철한.송태곤 등 태풍의 핵으로 등장한 한국 10대들이다. CSK배 우승으로 자신감을 키운 중국세력도 우승을 노리는 한 축이다.

이들이 현존하는 3대 세력이라 할 수 있다. 주최국 일본은 모처럼 상위 랭커들이 총출동해 자존심 회복을 노리고 있지만 미국.대만.남미.유럽 등과 함께 들러리가 될 공산이 크다.

오히려 이들보다는 1993년 이 대회에서 나란히 결승에 올라 한국에 후지쓰배 첫 우승컵을 안겨줬던 조훈현.유창혁 쪽이 조금 더 위협적인 존재일지 모른다.

한국은 이창호.조훈현.유창혁.이세돌.최철한.조한승.박영훈.송태곤 등 최정예 8명이 출전한다. 중국은 구리7단.저우허양(周鶴洋)9단.왕레이(王磊)8단.쿵제(孔杰)7단.추쥔(邱峻)6단 등 5명. 일본은 기성 하네 나오키(羽根直樹)9단, 명인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9단, 본인방 장쉬(張)9단 등 7명.

대회는 10일 24강전,12일 16강전을 치르며 실제 도꾜의 주인공이 가려질 결승전은 7월에나 열린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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