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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Leisure] 여보게 봄, 조금만 더디 가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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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군 창선교 죽방렴 인근의 유채밭(上)과 가천 다랭이 마을.

멀다. 그리고 넓다. 게다가 들고 나는 길이 외길이어서 쉽사리 갈 엄두를 내기 어렵다. 경남 남해군이 1년 전까지 그랬다. 차를 몰고 경남 하동에서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도, 내처 창선교를 지나 창선도(경남 남해군)까지 깊숙이 들어간 길손이 남해군을 벗어나려면 이들 다리를 되짚어 나와야 했다.

남해도만 해도 제주도.거제도.진도.강화도에 이어 남한에서 다섯째로 큰 섬 아닌가.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창선도와 삼천포항(경남 사천시)을 잇는 창선.삼천포대교가 지난해 4월 28일 뚫렸기 때문이다. 하동~남해~사천 드라이브 루트가 생긴 지 이제 1년. 남해는 아직 순수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남해 드라이브의 기점은 남해대교 또는 창선.삼천포대교다. 바다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남해대교에서 시작하자. 그래야 바닷가쪽 도로를 줄곧 탈 수 있다. 남해대교 북단, 그러니까 하동에서 남해대교에 접어들며 자동차 주행거리계를 '0㎞'로 맞추자.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135㎞ 남해 드라이브. 이제 시작한다.

황사만 없다면 차창을 활짝 열자. 남해대교를 건너면서부터 매운 냄새가 날 것이다. 남해의 주산물은 마늘. 시야에 들어오는 푸른 밭은 죄다 마늘밭이다.

남해대교 북단으로부터 4.6㎞ 지점. 19번 국도 오른편에 이락사 관광안내소(055-863-4025)가 나타난다. 1년 365일 연중무휴로 오전 9시30분 ~ 오후 5시30분 관광안내도를 얻을 수 있다(사천에서 창선.삼천포대교를 넘어와도 곧바로 관광 안내소가 있다). 게다가 공중화장실이 있다는 장점 때문에 관광버스가 꼭 쉬어가는 곳이다. 이락사는 이순신 장군이 노량 앞바다에서 숨진 뒤 맨 처음 그 영구를 모셨던 곳에 지은 사당. 대부분 이락사만 보고 돌아서지만 500m 안으로 소나무와 동백이 섞여 있는 오솔길을 더 들어가면 탁 트인 바다가 나온다.

"아따. 동백잎이 어쩜 이리 기름지다냐."

전남 여수를 거쳐 왔다는 광주댁들. 흥을 못이겨 한마디씩들 꺼낸다. 이런 게 춘심(春心)이지.

오솔길 끝, 첨망대(瞻望臺)라는 누각이 있는 곳. 북으로 하동, 서쪽에 광양, 그리고 서남쪽에 여수 땅이 코앞에 펼쳐진다. 한 곳에서 서너개 시.군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어디 흔한가. 지도도 얻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달린다.

한적한 도로,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길가에 핀 진달래.개나리.유채꽃이 들썩거린다.

^맛집=23.6㎞ 지점의 남해별곡(055-862-5001.서면 서상리). 바다를 보고 있어 풍광이 좋다. 인기 메뉴는 산낙지볶음. 3만원짜리면 네명이서 배불리 먹을 수 있다. 공기밥 별도.

19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77번 국도 분기점에서 우회전(관광안내도에 1024번 지방도로로 나와 있는 도로가 고현면 구간에선 77번 국도로 이름이 바뀌었다). 바다와 만나다 헤어지다를 되풀이하다 26㎞ 지점에 남해 향토 역사관.스포츠파크(서면 서상리)가 나타난다.

남해 향토역사관(055-860-3256.어른 700원, 매주 월요일 휴관)은 시.군마다 있는 역사관 수준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팔만대장경, 삼별초, 이순신 장군, 서포 김만중 등이 이곳 향토사(鄕土史)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남해는 유서 깊은 동네다. 팔만대장경을 판각한 곳이며, 고려말 여몽연합군에 대항했던 삼별초의 본거지 중 하나였으며, 서포 김만중이 그의 인생에서 세번째로 유배와 기거하다 숨진 곳이다.

스포츠 파크는 남해군이 축구.야구 선수들의 전지 훈련을 유치하기 위해 조성한 곳으로 축구장.야구장 등 선수들을 위한 시설 외에 맨발지압공원과 어린이놀이터.해안산책로 등을 갖추고 있다. 이 중 어린이놀이터가 특히 인기다. 재미있고 독특한 놀이 기구가 많아 경남, 전남 등지에서 놀이터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 숙소=스포츠파크 내에 있는 스포츠파크 호텔(055-862-8811.www.nsfh.co.kr)은 남해군 내에서 가족 단위 여행자가 묵기에 가장 깔끔한 숙소다. 4인 가족이 묵을 수 있는, 콘도 형태의 온실방이 14만5200원.

스포츠파크를 벗어나 1024번 지방도로를 달리다 남해.남면 갈림길에서 우회전해 남면 방향으로 마냥 달린다. 응봉산(472m).설흘산(481m) 자락으로 나 있는 이곳 도로는 국내 해안도로 중 최고다. 곡선 구간이 적당히 섞여 운전하는 재미도 있고, 더욱이 까마득히 내려다보는 바다가 상쾌하다. 밭으로 나가는 노인들이 지게를 진 채 앞뒤를 잘 못보고 도로를 건너는 경우가 많으니 조심할 것.

49.3㎞지점의 가천 다랭이마을. 산비탈을 깎아 만든 계단식 논이 비탈을 따라 바다까지 이어지는 곳. '다랭이'는 '다랑이'의 사투리로 '좁고 작은 논배미'를 일컫는단다. 현재는 논에서 마늘을 키우고 있다. 농촌진흥청 선정 전통 테마마을로 도시인들을 위한 농촌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남해군 농업기술센터 055-860-3565. 다랭이마을을 지나면서 1024번 도로는 앵강만을 둘러싸고 달린다. 앵강만에 떠 있는 섬 노도는 서포가 유배 생활을 하며 사씨남정기, 서포만필 등의 작품을 썼다는 곳이다. 남면.이동면.상주면 등 세 개의 면에 둘러싸인 앵강만은 큰 호수처럼 보인다.

이어 19번 국도를 다시 탄다. 상주해수욕장(76.2㎞ 지점)과 송정해수욕장(79.9㎞ 지점)을 연거푸 만난다. 두 해수욕장은 해안선이 활처럼 휘어져 포근한 느낌을 준다.

19번 국도와 3번 국도가 만나는 곳에서 잠시 벗어나 찾아가는 미조항(86.7㎞ 지점). 남해군에서 가장 활기 있는 포구다. 잠시 차를 세우고 고깃배에서 활어 운반차에 장어 등의 고기를 옮겨 담는 풍경을 구경해도 재미있다. 포구 내 도로를 헤매며 이곳저곳 기웃거린다. 미조항 앞에 떠 있는 조도.호도 등의 섬들이 자꾸 발길을 붙잡는다.

▶ 맛집=미조항 남해군수협 건물 뒤편의 삼현식당(055-867-6498). 멸치회 한 접시가 2만원, 멸치회를 넣은 회덮밥은 6000원.

느긋이 움직였다면 머리 위에 있던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105㎞ 지점의 해오름 예술촌(055-867-0706.www.sunupart.co.kr.삼동면 물건리). 이국적으로 꾸민 건물 외관이 주변 풍광과 대비돼 눈에 띈다. 폐교를 개조해 미술창작실.목공예 창작실.생활자료 전시관.갤러리.와인 바를 운영하는 곳이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는 와인 동호인들이 모여 와인 파티도 연다고. 전체 입장료는 없고 개별 프로그램 참가비를 받는다.

3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어느덧 남해도와 창선도를 잇는 창선교(117.7㎞ 지점). 여기서 잠깐, 창선교를 건너기 직전 좌회전해 방파제를 따라 들어간다. 옛적 고기를 잡을 때 썼다던 죽방렴을 볼 수 있다. 지금도 쓰인단다. 나무를 주렴처럼 엮어 조류가 흘러오는 방향을 향해 갯벌에 V자 형태로 박아 놓고 고기를 잡는 어구다. 죽방렴 일대의 방파제는 지난해 태풍 '매미'때 많이 상해 여태 공사 중이다. 그래도 남해에서 가장 운치 있는 유채꽃밭이 있으니 꼭 들어가 보시라.

▶ 맛집=달반늘 숯불장어구이(055-867-2970.삼동면 지족리). 통발로 잡은 붕장어 구이가 1㎏(2인분)에 1만7000원. 달반늘은 이곳 동네 이름이라고 한다.

남해도 쪽으로 해가 진다. 창선교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해 1024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달린다. 서쪽 하늘이 붉어진다. 131.3㎞ 지점의 레스토랑 겸 커피숍 '바이킹'(055-867-7762.창선면 대벽리). 일몰을 볼 수 있는 야외 테이블이 있으니 잠시 머물다 가도 좋다.

남해 드라이브의 끝인 창선.삼천포 대교를 건너오면 134.8㎞. 길 안내는 여기까지다. 귀가 길 조심하시길.

남해=글.사진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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