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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패스트푸드네이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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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모건 스펄록 감독의 ‘수퍼사이즈 미(Super Size Me·2004)’는 패스트푸드의 위험성을 경고한 대표적 영화다. 감독 스스로 30일 동안 맥도널드의 수퍼사이즈 메뉴만 먹고 몸에 일어난 변화를 기록했다. 일종의 패스트푸드 식단체험기다. 신체 변화는 급격했다. 일주일 만에 체중이 5㎏ 늘고 두통·무기력·우울증이 찾아왔다.

수퍼사이즈 미가 패스트푸드와 건강의 문제를 다뤘다면, 다음달 국내 개봉하는 ‘패스트푸드네이션(Fast Food Nation·2006)’은 아예 패스트푸드 산업 자체를 파고 든다. 패스트푸드네이션이라는 제목부터가 패스트푸드가 지배하는 미국, 나아가 현대 사회에 대한 은유로 보일 정도다. 원작은 기자 출신인 에릭 슐로서의 논픽션이다. ‘비포 선 라이즈’의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원작이 2년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을 지킨 데 이어 영화는 200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올랐다. 감독의 페르소나(영화적 분신)인 에단 호크에 이어 근육맨 브루스 윌리스, 반항아 로커 에이브릴 라빈의 깜짝출연이 화제가 됐다.

영화는 가상의 회사 ‘미키즈’와 가상 도시 ‘코디’를 배경으로 한다. 미키즈 버거에 이물질이 들어갔다는 루머가 떠돌자 마케팅 간부가 코디에 급파된다. 쇠고기 패티를 납품하는 공장과 대형 목장이 있는 곳이다. 현장조사 중인 그의 시선을 따라 영화는, 소의 도축과 패티 생산공정을 좇아간다. 대부분 멕시코 불법 체류자인 공장 근로자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다 좌절하는 모습도 함께 보여준다. 어떻게 1달러도 안 되는 햄버거가 가능한지, 또 환경운동가들의 몽상은 얼마나 무력한지도 보여준다.

패스트푸드네이션은 최근 핫이슈로 부상 중인 쇠고기 산업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목장에서 식탁까지 소의 일생에 대한 보고서라고도 할 수 있다. 후반부 소 도축 장면은 아주 리얼한데, 채식주의자인 감독은 촬영에 집중하기 힘들어했다는 후문이다.

얼핏 선동적으로 보일 정도로 과도한 선악 이분법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영화는 먹거리 문제가 현대 사회 주요한 갈등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정치·사회·환경·계층 갈등의 핵심으로서 먹거리 문제다. 울리히 벡의 말대로 “가장 일상적인 문제가 가장 정치적인 문제가 되는 위험 사회”의 도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실제로도 우리는 최근 광우병 파동 이후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 가구의 엥겔계수가 무섭게 치솟는 사례를 목격한 바 있다.

무엇을 먹는가, 혹은 당신의 식탁은 얼마나 안전한가가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의 사회적 위치와 정치적 입장을 결정짓는 시대가 된 것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