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제3부 선화공주(善花公主) 서동요(薯童謠) 14 『이리 들어와.』 아버지가 애소를 돌아보며 말했다.
감기들어서인지,아니면 피곤해서인지 쉰 목소리였다.
푹 고개숙인 애소가 안방으로 들어와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밤색 터틀넥 스웨터에 얇은 레인코트를 걸친 초라한 차림이었다.착잡했다.저 철없는 아이를 누가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삼았단말인가. 『코트 벗고 이리와 앉아.』 아리영은 애소의 손을 잡고 보료에 앉혔다.차가운 손이 떨리고 있었다.
『어디서 오시는 길이에요? 제주도로 가셨다 해서 나선생님께 전화드렸었어요.』 『강릉에서 오는 길이다.』 아버지는 침통한 얼굴로 대답하시고나서 덧붙였다.
『우선 요기하게 해야 할거야.며칠째 통 먹지 못하고 있는 것같애.』 『샌드위치라도 우선 만들까요?』 아리영은 안방을 나서며 애소에게 일렀다.
『편히 앉아 있어.아니다,그 보료에 누워 좀 쉬는게 좋겠어.
』 그러나 애소는 막무가내로 보료에서 방바닥으로 내려와 두 무릎을 모아 꼿꼿이 앉아 있었다.
『제주댁이 집에 왔었다지? 놀랐겠구나.』 부엌으로 따라오며 아버지가 말을 걸었다.그제서야 의혹은 노여움이 되어 터졌다.
『어떻게 된 거예요?』 그 물음투엔 아버지에 대한 비난이 강하게 깃들여져 있었다.
『서귀포 아주머닌 어디서 만나셨어요?』 『강릉 버스터미널에서….』 아리영을 만나 강릉에서 내려간 제주댁은 그 길로 애소를입원시켜놓은 병원으로 갈 참이었는데 제주도로 떠나려던 아버지와맞닥뜨린 것이라 한다.
『병원? 벌써 수술했나요?』 비명소리와 같은 아리영의 반문(反問)에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제주댁이 서울에 다녀와 수술에입회한다는 조건으로 입원시켜놓았던 모양이라 했다.
안심하는 한편으로 분이 치솟았다.
『대체 누구예요,애소의 상대가?』 아버지는 저녁놀과 같은 연약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였다.
『글쎄,그걸 말하지 않는구나.이서방 아이라고 소문났다는데 완강히 그건 아니라 하고,그럼 목장이나 농장사람들 중의 누구냐 해도 아니라 그러고….네가 차분히 물어봐 주었으면 해서 데려왔다.어떻든 상대는 찾아야 할게 아니냐.』 아리영은 안도의 숨을길게 내쉬었다.최소한 아버지와는 무관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누구인가.정말 남편의 소행이 아닌가? 의심이 다시고개를 들었다.
글 이영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