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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레저] 교토 유적지 & 후쿠이 공룡박물관 나들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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犬犬.

교토의 여염집 대문에 붙어 있는 말이다. 무슨 뜻일까. 개조심? 개 두 마리 키웁니다? 아니다. 예방접종 했으니 걱정말라는 표시다. 그 아래는 접종날짜가 붙어 있다. 천천히 걷는 여행길에선 이처럼 생각지 않은 재미를 만날 수 있다. 걷기엔 콘크리트빛 도심보다는 문화향 그윽한 옛 도시가 좋겠다. 그런 면에서 '일본의 경주' '일본인 마음의 고향'인 교토는 안성맞춤이다. 1000여년 간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는 시내 전체가 유적 박물관이다. 17곳의 신사, 절.성이 세계문화유산이다. 2차대전의 참화를 비껴난 것도 이 덕분이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교토, 태고의 신비가 숨쉬는 후쿠이를 맛보자.

▶ 호센잉절 사랑채에서 내다 본 정원.

***인사동을 닮은 교토 옛길

4월의 일본은 벚꽃 천지다. 그 중 교토는 특히 아름답다. 능수버들처럼 축축 늘어진 지다래 등 다양한 종류의 벚꽃을 5월 초까지 볼 수 있다. 시내 동쪽 사쿄구에 있는 '철학자의 길'은 햇살 쏟아지는 아침에 들러야 제격이다. 와카오지 신사에서 긴카쿠지 절에 이르는 이 길은 철학자 가와카미 하지메와 니시타 이쿠타로가 사색에 잠겨 걷던 길이다.

벚꽃터널 옆으로는 비와호에서 끌어들인 물이 흐른다. 팔뚝만한 잉어가 노닐고 여름밤에는 개똥벌레의 군무를 볼 수 있다. 인근에 있는 절 에이칸도에는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뒤돌아보는 아미타불상'이 있다. 계단을 밟고 올라간 산기슭의 다보탑에서는 교토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북쪽 기타구에 있는 '샤케(社家)의 길'에는 신사의 의식을 집전하던 신관들의 저택이 40여채 남아 있다. 이 중 두 곳을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있어 당시 신관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인 가미가모는 아직도 위세가 대단하다. 신을 모시는 사당이 두 곳인 점이 독특하다. 본당과 처마를 잇대고 있는 작은 사당은 비상시에 신이 옮겨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두툼한 신사의 지붕은 욕조재료로도 쓰이는 히노키 나무로 만든다. 80년 된 나무의 껍질을 벗겨내고 다시 10년을 기다려 새로 생긴 껍질을 벗겨 켜켜이 쌓아 만든다.

신사의 출입문 옆엔 술 좋아하는 신들에게 바치는 대형 술통이 쌓여 있다. 주류회사의 광고판이 되기도 하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닌가.

노란 가로등이 은은하게 빛나는 교토의 밤은 산넨자카 비탈길에서 깨어난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과 손에 손을 잡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이 길은 200년이 넘은 벚나무가 있는 마루야마공원에서 기요미즈테라(절)로 이어진다. 골동품 가게.토산품 가게.점집 등의 전통가옥이 늘어선 정겨운 길이다. 교토의 인사동이라 할 만하다. '오사카는 먹어서 망하고 교토는 입어서 망한다'는 속담처럼 이 지역의 직물은 유명하다.

느긋하게 구경하며 선물 몇 개 고르는 것도 괜찮겠다. 길의 한쪽 끝에 있는 지온인 절을 그냥 지나치면 후회한다. 일본 전국에 7000여 사원을 거느린 정토종 총본산인 이 절의 본당은 한꺼번에 4000명이 참배할 수 있다. 휘파람소리 나는 대청마루, 30㎏이나 나가는 큰 주걱 등 7대 불가사의가 구경거리. 최근에 국내서도 개봉된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를 찍은 곳이기도 하다.

***호젓한 산길서 만난 정원

아기자기한 정원감상을 어찌 빼놓을 수 있을까. 일본 건축에서 집과 정원의 비율은 3대 7 정도란다. 면적이 아닌 미적인 비율을 말한다.

대자연은 뜰 안의 작은 공간으로 옮겨져 줄여지고 또 줄여져 풀 한 포기 모래 한 알에도 의미가 담긴다.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잡는 곳이 한적한 시골인 오하라 지역의 호센잉절 앞뜰이다(사진 참조). 사랑채의 탁 트인 '거울 창'을 통해 내다보는 자연은 감탄사도 조심스럽다. 앉으면 일어나기가 싫다. 차 한잔 마시며 나만의 호사를 즐겨보자.

그 기쁨 지속하고 싶으면 고개를 들지 말라. 머리 위에는 무시무시한 피의 역사가 있으니. 바로 혈천정(血天井)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이 통일전쟁에서 숨져간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 격전지였던 모모야마성의 마루판자를 뜯어 보내 만든 것이다. 칼에 맞아 흘린 핏자국, 발자국, 할복하며 괴로워 손톱으로 바닥을 긁은 자국 등이 아직도 선명하다.

***태고의 신비 공룡박물관

아이들과 함께라면 후쿠이현에 있는 공룡박물관에 가보자. 교토에서 후쿠이까지 기차여행은 1시간 30분 내내 눈이 즐겁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작은 바다' 비와호는 수평선이 아스라하다.

후쿠이는 일본 공룡 연구의 거점이다. 1989년 한 중학생이 우연히 화석 조각을 발견한 뒤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됐다. 2000년 7월에 문을 연 박물관에는 티라노사우르스 등 35구의 골격표본이 실물크기로 전시돼 있다. 이들 중 6구는 진짜다. 공룡 알을 본떠 만든 은빛 돔의 입구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35m의 에스컬레이터는 태고의 신비 속으로 가는 길이다. 공룡의 세계만이 아니라 지구와 생명진화의 역사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매주 월요일은 쉰다.

교토.후쿠이=안충기 기자
사진=호센잉절.후쿠이 공룡박물관

***여행쪽지

교토는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기차로 1시간15분 거리, 오사카 국제공항에서는 버스로 1시간 걸린다. 엄청난 규모의 교토역 터미널 빌딩은 일본의 자랑거리다. 교토황궁과 붙어 있는 도시샤 대학에는 윤동주의 시비가 있다. J리그 경기일정도 챙겨보자. 잘하면 교토 퍼플상가에서 뛰고 있는 최용수와 김도균의 홈경기를 볼 수 있다. 걷다 다리가 아프면 고풍의 관광 인력거를 찾아보자. 교토의 음식 명물은 고등어초밥인 '사가스시'다. 생각과 달리 비린내가 나지 않는데 염장 고등어를 식초에 담가 소금기를 뺀 뒤 만들었기 때문이다. 후쿠이는 이시카와현 고마쓰 공항에서 내려갈 수도 있다. 인천공항에서 월.수.금.토 일주일 네 번 운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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