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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답사 1번지, 강진 기행> ④ 다산학의 산실, 다산초당

중앙일보

입력

다산의 푸른 고독에 젖다

백련사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다산초당’이다. 백련사와도 멀지 않다. 동백숲길을 지나 백련사에 다다를 때쯤, 왼쪽으로 뚫려진 조그마한 길이 있다. '다산초당'이라 써진 작은 이정표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 다산초당으로의 오솔길이 시작된다. 1km가 채 안 되는 이 길은 천주학쟁이로 몰려 유배 중이던 다산 정약용과 백련사 주지 혜장선사가 차와 시국담을 나누며 거닐던 길로도 유명하다.

정약용과 혜장선사가 학문을 나누며 거닐던 오솔길. 다산초당과 백련사 간 숲길은 만덕산 숲 탐방로이기도 하다.

걷다보면 흙길, 계단길, 바윗길 등 다양한 모양들로 이루어진 길들을 만날 수가 있다. 덕분에 짧지 않은 산길이 심심하지 않다. 무엇보다 여기저기 지천인 차나무가 좁은 산길과 어우러져 사색하며 걷기에는 더없이 좋다.
백련사와 다산초당을 품은 만덕산은 예로부터 야생 차나무가 지천인 덕에 ‘다산(茶山)’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강진에서만 18년간의 유배생활을 한 정약용이 호를 다산이라 지은 연유도 여기에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구석구석에서 차를 따는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다고 한다. 시간이 된다면 한가득 손에 쥐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차밭 사이로 언뜻언뜻 내려다보이는 강진만 풍경 또한 일품이다.

산길 곳곳에는 다산(茶山)답게 차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구불구불한 산길에 '얼마나 더 가야 하나?' 느낄 때쯤, '천일각'이라 써진 정자를 하나 만날 수 있다. 강진만의 시원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천일각은 다산이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앉았던 곳이라 한다. 시원시원한 풍광에 다산이 글을 쓰다가도 언제라도 이곳에 와 앉으면 시름이 싹 가실 듯하다.

천일각에 올라앉으면 강진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천일각 옆으로 내려오면 가장 먼저 다산동암에 이른다. 솔바람이 불어온다해 송풍암으로도 불린다. 송풍암이라는 별명답게 울창한 나무사이로 비취는 햇살과 시원한 바람은 긴 산책길에 지친 다리를 쉬어가기 좋다.

나무 울타리를 따라 다산동암으로 내려가는 길.

다산동암 마루에 걸터앉아 불어오는 솔바람에 땀을 식힌다.

동암을 지나면 솔숲에 둘러싸인 다산초당이 나온다. 다산초당은 정약용이 강진 유배생활 18년 중 10여 년을 생활하면서 후학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목민심서’ 등 600여 권의 방대한 책이 이곳에서 써졌다. 초당이란 것은 말 그대로 풀로 지은 집, 즉 초가집을 말하는 것인데 지금의 초당은 1958년 옛터의 주춧돌 위에 기와집으로 다시 지은 것이다.

초당 주변으로 ‘다산4경’이라 불리는 유배생활의 흔적이 남아있다. 다산4경이란 다산이 유배생활을 마친 후 초당 뒤쪽의 바위에 직접 새긴 정석(丁石)이란 글씨와 솔방울을 지펴 찻물을 끓이던 부엌 다조, 찻물로 쓰던 약수터의 또 다른 이름 약천과 마지막으로 초당 오른쪽으로 다산이 직접 물을 끌어 만든 작은 연못인 연지석가산이다. 곳곳에서 묻어나는 다산의 흔적은 산속 작은 초당에서의 생활이 다소 고독했음을 짐작케 한다. 그 고독함을 견디려 다산은 끊임없이 책을 파고 들어갔고, 글을 썼는지도 모른다.

다산초당과 연지석가산.

다산초당 앞길로 내려가면 다산유물전시관으로 이어진다. 길 양쪽으로 정약용 선생의 격언이 걸려있다.

초당에서 다산유물전시관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나무마다 다산 정약용선생님의 격언들을 붙여 놓았다. 글귀 하나하나를 읽다보면 다산의 실학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주말이면 초당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위한 체험학습도 열린다.

객원기자 최경애 (doongj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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