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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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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개발사업 규모나 산불 피해면적 같은 것을 쉽게 설명할 때 흔히 여의도 면적의 몇 배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인터넷에는 여의도 면적이 두 가지로 나온다. 어디에서는 8.4㎢, 어디에서는 2.95㎢라고 한다.

8.4㎢는 여의도 주변 한강 중간까지 포함하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관할 구역 넓이다. 2.95㎢는 여의도를 둘러싼 제방 안쪽 넓이만을 말한다. 면적을 비교할 땐 2.95㎢가 맞지만 여전히 8.4㎢도 쓰인다.

영국의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32년 전 『이기적인 유전자』란 책에서 ‘밈(meme)’이란 개념을 내놓았다. 밈은 쉽게 말해 문화적 유전자다. 생일 축하 노래, 설날 차례 지내는 법처럼 읽고 듣고 배워서 퍼져나가는 것이다. 여의도 면적은 2.95㎢라고 하는 것도 하나의 밈으로 볼 수 있다.

밈이란 말은 유전자를 뜻하는 ‘gene’에서 본뜬 것이다. 올바른 밈이든, 잘못된 밈이든 한번 사용되면 유전자를 담은 생물체처럼 퍼져나간다. 스스로 복제하는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지난 석 달 동안 한국 사회는 자신을 복제하는 세 가지에 휘둘렸다. 첫째는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였다. 바이러스 자체는 생명없는 입자지만 닭·오리의 세포에 침투하고 그 세포를 이용해 자신의 DNA를 복제한다. DNA에 돌연변이가 생기거나 뒤섞이면 위험한 H5N1형 바이러스가 나올 수도 있다.

두 번째가 미국산 쇠고기 안전 논란의 원인인 프리온이다. 프리온 자체는 사람과 소의 뇌 속에 늘 존재하는 단백질이지만 일단 변형 프리온이 들어오면 정상적인 프리온도 변형 프리온으로 바뀐다. DNA도 아닌 단백질인 변형 프리온이 자신을 복제한 셈이 된다. 변형 프리온은 광우병(소해면상뇌증·BSE)을 일으킨다.

세 번째가 바로 밈이다. 수도사업이 민영화되면 수돗물값이 1000배나 치솟을 것이라는 ‘수돗물 괴담’, 광우병에 대한 정보와 함께 공포도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밈이었다.

밈의 본고장인 영국에서는 최근 인터넷의 정보 유통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스코틀랜드 중학교 졸업자격시험의 합격률이 떨어진 게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일부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인 탓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관련 지식을 자유롭게 편집·수정할 수 있는 탓에 부정확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된 정보가 포함될 수 있다는 걱정은 전부터 있었다.

DNA가 잘못 복제되면 돌연변이나 암이 생긴다. 프리온이 바뀌면 광우병이 생긴다. 잘못된 밈은 사회에 크고작은 해악을 끼친다. 인터넷 시대에 밈은 훨씬 더 빨리 복제된다. 인터넷이 신뢰의 공간으로 남으려면 잘못된 밈을 만들지 않으려는 네티즌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