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효고의 마쓰시타 자원 리사이클 센터에서 폐TV가 재활용 목적으로 분해되고 있다. 이 센터는 가전업체 마쓰시타가 2월 개설했다. [마쓰시타 제공]
일본 북부의 폐광 지역인 아키타(秋田)현 고사카(小坂). 1800년대부터 비철금속 광산으로 유명했지만 1980년대 말 자원 고갈로 폐광된 뒤 한때 잊혀졌다. 그러다 이 지역이 올 들어 광업으로 다시 들썩이고 있다. 4월 도와메탈마인의 제련공장이 풀가동하면서부터다. 종전의 천연 광산이 문을 연 게 아니다. ‘도시광업’이라는 새로운 광산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도시광업이란 휴대전화·PC·가전제품 등 폐전자·전기 제품에 들어 있는 광물을 채취하는 것이다. 휴대전화 한 대에는 금 0.02g을 비롯해 은(0.14g), 니켈(0.27g), 텅스텐(0.39g), 팔라듐(0.005g)이 있다. 휴대전화 1t(약 1만 대)에서 나오는 금은 200g. 1t짜리 금광석에서 채굴할 경우엔 금이 평균 5g 정도 나온다. 도시광업이 천연 광산보다 채굴 효율이 높다는 이야기다. 원자재값이 뛰면서 일본 정부는 도시광업 지원에, 업계는 관련 기술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도시광업이 살길=일본 물질재료연구소에 따르면 자국 내 전자제품에 들어 있는 금은 6800t에 이른다. 세계 지금(地金) 매장량(4만2000t)의 16%에 이른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일본의 전자제품 속에 은은 세계 매장량의 23%, LCD TV에 들어가는 인듐은 38%에 달한다. 현재 이런 자원의 상당수가 창고나 서랍에서 잠자고 있다. 그런데 최근 국제 원자재값이 가격이 급등하자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리사이클링법을 강화하고 폐전자·전기제품 회수법을 공표했다. 리사이클 대상은 브라운관TV·냉장고·에어컨·세탁기 등 4종이다. 내년부터는 액정TV와 세탁기도 폐자원 회수 대상에 포함된다. 리사이클 의무 비율은 무게 기준으로 TV는 55% 이상, 에어컨은 60% 이상, 냉장고와 세탁기는 50%다.
일본의 가전 리사이클법은 이미 2001년 시행됐지만 그간 업계 반응은 무덤덤했다. 하지만 원자재값이 급등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또 경제산업성은 폐기 부품에서 희귀금속을 분리하는 기술을 개발할 경우 세금 환급을 해주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와 기업은 ‘도시광업이 다국적 메이저 기업들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도와메탈마인의 야마자키 노부오 사장은 “도시광업은 다국적 메이저 업체에 휘둘리지 않고 채굴이 가능한 일본 고유의 자원”이라며 “폐가전제품은 버릴 게 없을 정도”라고 평했다.
◇기술경쟁 불 붙어=일본 내 전기·전자제품의 금속제련·리사이클 전문업체 사이에는 기술개발 경쟁에 불 붙었다. 고사카 제련 공장은 용해로 한 개만 있으면 자원을 회수할 수 있는 신형 설비를 개발했다. 종전에는 용해로 3개를 연결해야 휴대전화나 가전제품에 들어 있는 금속을 회수할 수 있었다. 신형 용해로의 처리 능력은 연간 15만t. 복사기의 감광 드럼에 쓰이는 셀렌(Se) 등 희귀금속을 포함해 모두 18가지 금속을 뽑아낸다.
닛코금속은 최근 100억 엔을 투입해 이바라키(茨城)현 히타치(日立) 공장에 도시광업 전용 설비를 도입했다. 이 설비로 연간 금 500kg, 인듐 6t을 회수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구리와 아연을 거둬 이 회사가 만드는 전자제품의 원료로 쓸 계획이다. 이 회사 히노 준조 심의역은 “금속 시세가 급등하고 있어 히타치 공장 투자금액을 4~5년 안에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도쿄=김동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