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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여행해야 하는 몇 가지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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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1 여행 내내 살펴본 결과 인도 여인들이 입는 사리는 같은 컬러, 같은 무늬가 하나도 없었다. 빛바랜 건물과 여인들의 옷 색깔이 어울린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인도는 ‘여행의 막장·끝장’이라는 말이 있다. 왠지 인도에 대한 이미지는 이처럼 부정적이다. 더럽고 무질서하고 불결하고 사람들의 생활은 지지리도 궁핍하고, 그래서 ‘보고 즐겨야 할 것’보다 ‘조심해야 할 것’이 더 많은 나라로 여겨진다. 특히나 거대한 인도 대륙 중에서도 북인도의 ‘골든 트라이앵글(델리·바라나시·아그라)’은 그 자체로 악명이 높다. 다녀온 사람치고 설사병 안 걸린 사람이 없고, 가는 곳마다 돈 달라는 거지 떼가 줄을 서고, 손으로 밥도 먹고 화장실 뒤처리까지 해야 하며, 심지어 숨이 턱턱 막히는 공해 때문에 마스크를 준비해야 하는 나라. 여행자들이 써 놓은 후기도, 여행 책자를 봐도 궁상맞기 짝이 없다.

인도에 다녀온 경험자 입장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멋진 곳이다. 적어도 내 여행의 경험들을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곳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특히나 일상이 지루해 죽겠고, 뭘 해도 흥이 안 나고, 소심한 인생에 문득문득 짜증 나고, 내 자신이 한심해 열받는, 그래서 ‘왜 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 가 봐야 할 곳임에 틀림없다.

‘범생이 라이프’에서 벗어나 일탈을 즐기다

도착하는 순간 코끝을 때리는 카레 냄새로 악명 높은 델리 공항. 선입견이 과했던 탓일까, 아님 피로로 무뎌진 나의 후각 때문일까. 다행스럽게도 인도의 첫인상은 평균 이상이었다. 그러나 배낭여행자들이 모인다는 ‘파하르간지’가 위치한 델리역 앞에 도착한 순간 말로만 듣던 소문은 현실로 나타났다.

유독 올드 델리가 그런데, 텁텁한 매연과 향료 냄새로 자욱한 새벽 공기를 뚫고 수많은 사이클릭샤(인력거)와 오토릭샤(삼륜차)들이 차선 없이 뒤엉켜 다니는가 하면, 그 사이사이를 가로지르는 사람들과 떠돌이 소들이 연출하는 실로 ‘어이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고 보니 사람이 다니는 인도도 없고 차선은 물론 횡단보도와 정류장은 더더욱 없었다.

심지어 사방에서 0.5초마다 울려대는 경적들은 혼을 쏙 빼놓을 지경이요, 티코의 동생쯤 되는 오토릭샤가 뿜어 대는 시커먼 매연은 단번에 여행자들의 기를 죽이고도 남았다. 그 와중에 새벽이슬을 맞고 잠에서 겨우 깬 퀭한 눈빛의 노숙자들까지…. 거리에는 떠돌이 소와 개들이 활보했고, 좁디 좁은 골목은 염소와 소가 버티고 있는(바라나시도 마찬가지다) 당황스러움과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 하지만 이보다 더 자연스러운 사파리가 또 있을까.

처음에 느꼈던 올드 델리에서의 이 황당무계함은 놀랍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해방감’으로 바뀌어 갔다. 그랬다. 그곳에서는 도둑질 빼고는 못할 것이 없어 보였다. 아무데서나 휴지 버리기, 되는 대로 무단횡단하기, 노상에서 취식하기…. 한국에서는 ‘몹쓸’ 짓들이지만 인도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문화라고 누군가 귀띔해 주었다.

떨어진 종이는 떠돌이 염소가 주워 먹고 버린 과일 껍질 역시 길거리 소의 간식이 된다니, 휴지 버리는 게 나쁠 리 없다고. 게다가 신호등도 없고 횡단보도도 없으니 아무데서나 길을 건넌들 누가 뭐라 할 것이며, 그 한가운데 철퍼덕 주저앉은들 나를 이상하게 볼 사람도 없으니 만사 고민될 게 없다. ‘하면 안 되는 것투성이’인 곳에서 평생을 소심한 범생이로 살았던 나는 델리에서의 ‘일탈(!)’이라는 새로운 경험이 반가웠다.

적은 돈으로도 지갑이 두툼해지는 호사

인도는 배고픈 나라지만, 많은 여행자는 이곳에서 의외의 ‘포만감’을 느끼고 돌아온다. 그 이유는 서울에서 늘 허기져 있던 지갑이 인도에 오면 신기하게도 빵빵해지기 때문이다. 이유는 너무나도 ‘착한’ 물가 덕분이다. 환전하는 순간 ‘이게 웬 횡재인가’ 싶고, 음식 가격을 보면서 눈을 의심하게 된다. 우리나라 돈으로 500원 정도면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250원만 내면 인도의 인기 음료인 라씨(요구르트)로 갈증을 달랠 수 있다.

오토릭샤를 타고 30분을 내리달아도 흥정만 잘하면 750원이 고작이다. 한 달 동안 30만원으로 자고 먹고 교통비를 충당하고도 몇 만원 남겨 왔다는 배낭객이 있을 만큼 인도의 물가는 착하다(500루피-우리 돈으로 7700원을 내면 주인은 충분한 잔돈이 없어 허둥지둥댈 정도다). 그러니 지갑을 열 때마다 소심해지고, ‘원 없이 질러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돈벼락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쪼잔하게’ 살고 있는 당신이라면 인도만큼 반가운 나라도 없을 것이다. 당신의 얄팍한 주머니를 부풀려 주는, 그래서 잠시나마 당신을 통 큰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기특한 나라니까.

잡념이 상념이 되고, 상념은 철학이 되다

2 여행자들로 하여금 ‘사색’과 ‘철학’의 의미에 잠기게 하는 갠지스강 풍경 3 오렌지색 터번을 두른 인도 남자의 오묘한 디테일의 수염과 편안한 미소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4, 5 처음에는 혼잡스럽게만 느껴지는 인도의 거리 풍경은 점차 여행자를 거대한 컬러의 향연 속으로 이끈다.

바라나시를 빼놓고 인도를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종교인에게는 더없이 성스러운 성지요, 일반인에게는 삶과 죽음의 터전이요, 여행객에게는 가장 ‘인도스러운’ 정취를 선사하는 갠지스강이 반겨 주기 때문이다.

내가 본 갠지스강은 하루 24시간, 어느 것 하나 같은 느낌이 없었다. 동 트기 전부터 어둠이 내릴 때까지 무수히 다른 색깔을 발산했고, 그 색깔들을 곱씹는 일은 조금도 싫증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실제로 바라나시에서는 이곳에 반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머물렀다 떠나는 여행자를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새벽녘 동이 틀 때쯤 갠지스강은 경건한 붉은 빛깔로 물든다. 동이 터 오는 하늘과 그 하늘을 한껏 머금은 강물, 그리고 힌두교 아낙들의 붉은색 빈디(이마에 찍는 장식)가 모든 빛깔을 잠재운다. 이 시간 인도인은 날씨와 상관없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강물에 기꺼이 몸을 담근다. 이때 그들의 표정은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보인다. 물론 TV에서 수도 없이 보아 온 장면이건만(심지어 CF에서도), 신기함을 넘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이던 강가는 정오 무렵부터 또 다른 여러 가지 빛깔을 띤다. 관광객을 상대로 250원짜리 차이(인도의 밀크 티)를 파는 어린아이들, 구걸하는 노인들, 강가에서 빨래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 경건했던 강은 어느새 치열한 삶의 터전이 되어 있었다.

비슷한 시각, 이삼백m 떨어진 인근 가트가 내뿜는 빛깔은 검고 어둡다. 천에 둘러싸인 시신들이 하나 둘 도착하면 화장터는 조금씩 활기를 띤다. 몇 시간 만에 곱게 단장한 시신들이 장작과 함께 검붉은 연기가 되고 한 줌 재로 변해 사라져 가는 과정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된다. 바라나시에서 삶과 죽음은 이렇게 일상적이다. 36년 넘게 한 번도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죽음’을 난생 처음 진지하게 바라봤던 순간이고,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내 눈에 비친 죽음은 그렇게 평온했고, 삶은 그렇게 허무했다.

무념(無念)으로 떠난 갠지스강. 그러나 어느새 생긴 잡념이 상념이 되고, 상념이 비로소 철학이 되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바라나시를 떠나게 될 때쯤엔 내 인생의 작은 ‘철학’을 갖게 된다. 이것이 내가 바라나시에서 느낀 또 다른 행복이었다.

상점 주인 물건 팔며 “Are you happy?”

인도 사람이 가장 즐겨 쓰는 유행어 중 하나는 “Are you happy?”인 것 같다. 물건을 파는 가게에서도 식당에서도 그렇게 물어 오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바라나시 상점에 갔을 때의 일이다. 흥정한 끝에 파시미나를 내가 원하는 가격에 살 수 있었다. 그때 주인이 웃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Are you happy?” 아마도 자신이 가격을 깎아 줘서 행복하냐는 뜻일 게다. 뜬금없는 질문에 살짝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다시 한번 미소를 띠며 “You are happy? I’m happy!”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인도인에게 행복이란 이런 거였다. 결코 거창하지 않은,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만나게 되는 작고 사소한 기쁨들.

가벼운 주머니로도 행복할 수 있는 곳, ‘느림’의 미덕이 여전히 살아 있는 곳, 상대방의 기쁨이 나의 행복이 되는 곳. 부디 나의 행복도 이런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오래지 않아 또 다른 인도를 만나러 갈 꿈에 부풀어 있다. 아이 러브 인디아(I Love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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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TIP
▶ 여행 가이드북에 따르면 설사나 복통을 조심하라는 경고가 많다. 게스트하우스 내에 있는 식당에서 약을 탄 음식을 줘 몇 날 며칠을 고생했다는 후기도 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열흘 정도 머무르면서 배탈 났다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 단, 가능하면 생수를 먹고,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은 피하도록 한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설사약과 소화제는 준비해 가도록 한다.

▶ 인도 사람을 모두 경계할 필요는 없다. 사실 소매치기나 도둑은 어디에나 다 있고, 오히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같은 유럽 지역에 더 많다. 선입견을 버리고 그들 문화에 섞이는 것만이 여행을 즐기는 비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보다 둘이 나을 듯.

▶ 숙소의 청결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에 침낭을 갖고 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씻을 곳이 마땅치 않을 수 있으니 휴대용 물 티슈를 준비하고, 기관지가 약한 사람인 경우에는 (특히 델리에서) 마스크도 챙길 것.

▶ 잔돈은 필수다. 좋은 호텔을 제외하고는 신용카드가 안 되는 곳이 대부분이며, 500루피(약 7700원)를 내면 잔돈이 없다면서 물건을 못 팔겠다고 하는 곳도 있다. 그러니 늘 잔돈을 충분하게 만들어 다니는 것이 안전하다.

▶ 인도 여행의 경우 패키지보다는 배낭여행을 추천한다. 특히 직장인들을 위한 배낭여행의 경우 패키지가 지닌 안전성(편리성)과 배낭여행의 낭만을 모두 갖고 있어 추천할 만하다. 특히 골든 트라이앵글 코스(델리-바라나시-아그라)의 경우 9일 코스로 짜여 있어 직장인에게 안성맞춤이다.

글=박현희(여성중앙) hisophy@joongang.co.kr 사진=신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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