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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상의 로봇 이야기] 로봇 名醫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7호 39면

얼마 전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 탄생했다. 오랜 훈련 끝에 소유스호를 타고 지구를 벗어나 우주정거장에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던 그를 보면서 문득 “저기서 맹장염이라도 걸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렇다고 우주여행을 할 때마다 외과의가 동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맹장염에라도 걸린다면 꼼짝없이 후송 우주선이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쟁터에서 일각을 다투는 부상병 수술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한데, 이를 해결할 방안 중 하나가 바로 수술로봇이다. 수술로봇을 활용하면 의사는 우주정거장이나 전쟁터 등의 극한지로 직접 찾아갈 필요가 없다.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도 현장에 설치된 로봇을 이용해 응급 수술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다.

몇 년 전 수술로봇으로 유명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인튜이티브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회사 입구에 들어서면 ‘인간 손의 한계를 넘어(Beyond the limits of the human hands)’라는 문구가 적힌 액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처음 그 문구를 보았을 때는 도달하고픈 목표에 대한 도전적 표현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는데 곧 이러한 목표가 허무맹랑하지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술로봇을 사용하는 경우 의사는 환자를 직접 수술하는 대신 얼마 떨어진 곳에 설치된 기묘하게 생긴 상자 앞에 앉아 수술을 집도한다. 로봇 팔에 장치된 카메라를 통해 환자 배 속을 보고 조종장치를 이용해 수술로봇의 팔을 움직여 수술을 하는 것이다.
현재 수술로봇을 이용하는 기술은 몇 개의 구멍만을 뚫어 도구를 삽입한 뒤 의사가 직접 시술하는 최소침습수술(Minimally Invasive Surgery)의 한계를 여러 면에서 월등히 넘어서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의료기관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대표적 장점을 열거하자면 첫째 매우 정교한 수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로봇을 이용하면 수술 부위를 크게는 20배나 확대해 볼 수 있는 반면 의사 손의 움직임은 10배 정도 축소할 수 있으며, 손의 떨림 역시 기계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현재는 인간의 손 움직임을 최대한 모사(模寫)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으나 앞으로는 로봇 손을 더욱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다양한 센서를 장착해 인간이 하기 힘든 고난이도의 수술도 간단하고 정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튜이티브사 기술 마케팅 담당자에 따르면 이러한 로봇기술은 외과의들의 정년을 대폭 연장시켜 앞으로는 80세의 노의사가 로봇의 도움을 받아 수술하는 광경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 장점은 로봇이 자율적 지능을 갖게 되면 정해진 수술 각본에 스스로 대응함으로써 의사의 수술 부담을 현격하게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의사가 미리 컴퓨터를 통해 수술의 방식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주면 모든 외과적 수술 과정은 로봇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훌륭하게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로봇기술은 외과적 수술뿐 아니라 초소형 로봇을 이용한 혈관 치료, 먹는 내시경로봇을 통한 위장기관의 진단 및 치료 등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던 환상적인 미래가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또다시 엉뚱한 생각이 든다. 예기치 못한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누구의 책임으로 봐야 할까. 수술 중 오작동으로 인간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로봇, 로봇 제작회사, 의사, 혹은 로봇 작동 엔지니어 중 누구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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