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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부추기는 ‘국사’에서 벗어나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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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 07면

잘 모르면 두 번 읽는 게 상책이다. 김기협 선생의 역사 에세이 『밖에서 본 한국사』(돌베개, 2008)가 그래야 했던 책이다. 추상적인 관념이나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기설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잘못 번역된 번역서처럼 문장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두 번씩 읽는 수고를 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 대담을 정리하는 지금도 나는 그걸 생각하고 있다.

장정일이 만난 작가 - 역사 에세이스트 김기협

“『밖에서 본 한국사』라는 제목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한국사를 ‘국사’라는 좁은 틀 속에서 기술하던 관례를 벗어나 동아시아와 세계사 속에서 조망해 보고자 했고, 두 번째는 한국사를 전공하지 않은 비전문가의 위치에서 한국사학계의 주류가 빠져 있는 맹점을 제시하려고 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자는 한국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민족의 역사를 가능한 한 초라한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신채호를 비롯한 한국 민족사학의 원류는 그런 일제 식민사관(제국사관)에 반발해 우리 것을 일방적으로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자기중심적 편향성을 가진 역사관을 키워 왔습니다. 그런 편향성이 일제 시대에는 대항적 의미가 있었지만, 이제 와서는 새로 점검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증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의 실제 속성은 썩 그렇지도 못하다. 역사 서술의 가장 원초적 형태는 인류 초창기부터 있었던 무당의 푸닥거리였다. 한 부족이 공유하는 과거의 기억은 푸닥거리를 통해 영광스러운 역사가 되고, 부족의 정체성을 강화해 준다. 그 과정에서 주술사의 능력은 곧바로 영도력이 되었고, 그것이 제정일치 체제의 근거가 됐다. 이처럼 역사 서술은 시초부터 정치적이었고 편향적(자민족적)이었다.

사정은 문자가 발생한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인쇄술의 발전과 정보의 대량 축적이 가능해지면서 역사는 국민 통제 수단으로 개발되고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데 바쳐진다. ‘동북공정’이나 ‘독도분쟁’에서 보듯이 근대 역사학은 푸닥거리보다 더 큰 규모의 ‘정치적 무기’가 되어 이곳저곳에서 생사를 건 ‘역사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와중에 민족과 국가의 울타리 밖에서 본다면 ‘국사’란 애초부터 성립되지 않으며 ‘국사’는 보편 학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일단의 기류도 감지된다. “배타적 민족주의가 용납되지 않는 세계적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역사와 별개의 ‘우리 역사’가 존재한다는 관념부터 척결”해야 한다는 『밖에서 본 한국사』의 입장 역시 ‘국사 해체’를 수긍한다.

“나는 고구려가 순수한 한민족의 나라가 아닌 만주에 거류하던 여러 북방 민족이 함께한 복합적인 국가였으며, 한민족 본래의 활동지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두만강과 압록강 이남이 아니라 대동강 이남이었다는 요지의 글을 한 인터넷 매체에 연재하면서 매국노라는 비난을 들었습니다. 역사의 연구에서는 진실(truth)이 물론 중요하지만, 서술에서는 진정성(truthfulness)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진정성은 내 사회를 아끼는 마음에서 나오는 거죠. 우리 사회가 앞으로 당면해야 할 중요한 과제(agenda)는 한반도와 중국 대륙의 왜곡된 역사관을 바로 펴는 일과 시급히 맞닿아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한반도에 유래했던 여러 국가는 중화 문명에 열심히 동화한 탓에 조공체제하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반면, 중화 문명에 동화되지 못한 오랑캐는 정복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은 고구려가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지 못하고, 중원을 차지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하지만, 몽골족(원)이나 만주족(청)처럼 중국을 정복한 민족은 하나같이 중국에 동화되면서 형해화되었죠. 그러니 역사는 항상 거시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서에 따르면 조선이 임진왜란과 일제 병합을 당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복합적 사정이 있지만, 일본이 침략을 결정한 두 시기가 공교롭게도 명(明)과 청(淸)의 국운이 쇠하던 때였다고 한다. 명나라나 청나라가 강했다면 일본은 중국 천하체제의 일부였던 조선을 침략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수성은 ‘독립성’과 ‘의존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지, 조선조의 사람들을 무턱대고 ‘중화 사대주의’라고 비난할 수 없는 이유다. 마찬가지로 예전에 중국 중심의 천하체제에 의지했던 것처럼 미국 중심의 세계체제에 의지하려는 성향도 우리에게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한다.

이 책을 두 번씩이나 읽게 만든 이물감의 정체는 ‘중국’이었다. 과거의 우리 역사는 중국에 너무 의지했기 때문에 세계사적인 변화의 시기에 독자적인 적응을 모색하지 못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한반도가 해방되면서 남한은 미국과 동맹이 되고 중국은 공산화되면서 ‘냉전시대’ 동안 한국과 중국은 적성국이 됐다. 어느덧 역사는 돌고 돌아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라는 탁자에서 두 나라는 다시 대면하게 된 것이다.

“1990년께 공산권 붕괴를 계기로 세계화라는 말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 이래 세계화가 꾸준히 이뤄졌습니다. 팽창과 정복을 절대선으로 삼던 세계화가 몇 세기 지속된 끝에 인류는 지구의 환경이 망가지고 자원이 고갈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팽창의 시대에는 먼 나라와 동맹을 맺고 가까운 나라끼리는 서로 싸웁니다(遠交近攻). 하지만 팽창이 불가능한 긴축의 시대에는 반대로 가까운 나라와 협조하고 먼 나라를 견제합니다(近交遠攻). 바로 유럽 공동체처럼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가 같은 문명권을 바탕으로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죠. 그걸 잘 하기 위해 ‘역사전쟁’이라는 굿판은 걷어치워야 합니다.”

지은이의 논리는 항간에 말 많은 뉴라이트 계열의 관점과 통하는 부분이 많다. 현재의 뉴라이트가 기존 학계에 대한 도전자의 위치에 있으면서 새로운 관점을 적극적으로 취하고 있는 때문에 개별적 사안에서는 서로 통하는 점이 꽤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선생은 일본 식민통치를 뉴라이트처럼 미화하지는 않지만 민족사관처럼 죄악시하지도 않으니, 이쪽에서 보면 저쪽처럼 보이고 저쪽에서 보면 이쪽처럼 보인다. 또 당시 상황에서 친일이 반민족행위의 온상이라고 여기기는 하지만, 친일과 항일은 정치적 선택일 뿐이며 그 자체로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는 것도 그렇다.


‘장 작가’란 줄임말로 불리는 장정일씨는 시인·소설가·희곡작가·책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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