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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다산은‘깊고 오묘한 산’섣불리 들어가면 조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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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소설가 한승원(69)이 신작 역사소설 『다산』(전2권, 랜덤하우스코리아, 각 권 336쪽, 각 권 1만원)을 내놨다. 13년 전 서울을 떠나 전남 장흥으로 내려가 ‘해산토굴’을 짓고 글을 쓴 그다. 그의 토굴 생활은 다산의 영향이다. 기나긴 유배생활에서 불멸의 작품들을 남긴 다산처럼, 그도 스스로를 가뒀다. 그의 역사소설 역시 다산을 향해 달려왔다. 다산의 제자 초의 스님을 다룬 『초의』(2003년)를 시작으로 2005년엔 다산의 둘째형 정약전을 그린 『흑산도 하늘 길』을, 그리고 지난해엔 다산의 후학 김정희를 복원한 『추사』를 출간했다. 이번 책은 그의 ‘다산 시리즈’완결편인 셈이다. 다산 정약용. 실용주의를 앞세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특히 재조명되고 있는 인물이다. 그에게 “왜 오늘날 다산인가”를 물었다. 책의 부제로 ‘시대를 일깨운 역사의 웅대한 산’을 붙인 그가 직접 내놓은 답은 이렇다.

왜 이 시대에 정약용 선생을 소설로 형상화시켰는가.

거문고 여섯 개의 줄은 누에고치 2만 개쯤의 실을 겹겹으로 비틀어 꼬아 만든 것이다. 거문고의 고아하고 구슬픈 소리는 에밀레 종소리처럼 죽음의 고통을 비틀어 꼬아낸 혼의 빛이다. 다산 선생은 경상도 장기와 전라도 강진에서, 불혹의 40세부터 18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만일 다산이 평생 벼슬살이를 하며 영달을 누렸다면 오늘의 영검하고 웅대한 산인 다산은 있을 수 없었을 터이다.

#자기 가두기와 풀어놓기

사람이 자기를 가두어놓고 기르기와 풀어놓기를 잘 하면 어떤 큰 일을 이룰 수 있다. 다산은 타의에 의해 갇혀 살면서 ‘사업’을 통해 자기의 갇힌 삶을 풀어놓곤 한 사람이다. 사업은 밥을 위한 이익 활동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주역』에서는 ‘천지우주의 원리에 따라 천하의 인민에게 실행하는 것이 사업이다’하고 말한다. 다산은 『대학공의』에서, 불교인은 마음 다스리는 것을 사업으로 삼지만, 유학자는 사업으로써 마음을 다스린다고 했다. 선생에게 사업은 깨달음이고 저술하기였다.

나는 13년 전 서울살이 도중 다산의 삶에 빠져들었고, 다산처럼 나를 가두어 기를 꿈에 빠져들었다. 그 꿈이 지금 전라도 장흥 바닷가에 지은 토굴에 나를 가두는 것으로 실현되었다.

#강철심보다 강한 다산의 생명력 

소설 『다산』을 나는, 1801년 신유사옥(벽파가 천주교를 내세워 정적을 숙청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귀양살이를 한 다산이 기구하고 신산한 운명을 어떻게 무엇으로 이겨냈을까, 하는 데에 푯대를 맞추어 썼다. 다산의 강철심이나 고래심줄보다 더 끈질긴 생명력을 형상화시켰다.

한 작가가 한 인물을 그린다는 것은 그 인물 속으로 작가가 들어가고, 작가 속으로 그 인물이 들어와,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다산과 한승원의 생명력이 동화되어 새로운 정약용이라는 생명체를 탄생시킨 것일 터이다. 서양의 새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던 조선조 후기, 사실에 의거해서 진리를 찾는 ‘실사구시’의 삶을 살았던 선생은, 어둠 속에서 깊이 잠들어 있거나 길을 잃고 헤매는 인민의 영혼을 일깨워주는 꼭두새벽의 쇠북소리이고, 잘 못 흘러가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아주는 관개(灌漑) 사업이고 채찍이고 찬연한 빛이다.

#다산에 잘못 들어가면 조난당할 수도

다산은, 산에 비유하면, 수많은 준봉들을 푸른 하늘 속에 묻고 있는 보랏빛의 영검하고 웅대한 산이다. 그 산에 잘못 들어가면 길을 잃고 조난을 당할 수도 있다.

다산과 사귄 이후 술병이 들어 40세의 나이로 요절한 혜장 스님은 길을 잃고 조난을 당한 경우일 터이고, 다산을 따름으로써 속이 웅숭깊어지고 영혼의 체구가 커지고 자유자재의 실사구시적인 선승으로 이름을 드날리게 된 초의 스님은 다산이란 산을 잘 탄 경우일 터이다.

나는 초의 스님처럼 다산을 잘 타려고 애를 썼다. 청렴하고 정직한 선생의 사상과 생명력을 읽어내는 일은 나에게 하나의 구도행각이다.

오래 전에 나는 선생의 둘째 형인 정약전 선생 이야기를 『흑산도 하늘 길』로 형상화 시켰고, 다음은 선생의 제자인 초의 스님의 이야기를 『초의』로 그려냈고, 선생의 후학인 추사 김정희의 이야기를 『추사』란 소설로 써낸 바 있다. 그 소설들을 쓰면서 먼발치로 읽어온 다산을 이번에는 정면으로 깊이 읽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선생의 무지막지하게 드높고 넓은 세계(학문) 속에서 절망한 혜장 스님처럼 한동안 길을 잃고 절망하며 헤매었다.

#주자학과 천주학의 양날

선생의 산 속에서 오랜 동안 나의 길을 찾기 위해서 헤매던 나는, 선생의 삶과 사상을 관통하는, 아킬레스건 같은 생각의 끈을 찾아냈다.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주자학을 읽다가, 성년이 된 다음 새 세계인 천주학의 교리서들을 읽고 환희했 고, 하느님을 깊이 신앙하기까지 했다.

이후 여러 이유로 천주학을 버렸다. 그리고 얼마쯤 뒤 선생은 주자학을 비판했다. 그것을 비판하면, 정적들이 사문난적이라 하여 죽이려고 들 만큼 주자학은 절대적인 것임에도 선생은 비판한 것이다. 그 비판의 밑바탕에 천주학이 깔려 있다.

선생의 사상 속에는 주자학과 천주학이 공생한다. 선생은 주자학을 비판하긴 하지만 외면하지 않고, 천주학을 버렸지만 그 요체를 가슴에 담고 있다. 가위에 비유한다면, 선생의 사상은, 주자학이라는 한쪽 날 위에 천주학이라는 다른 한쪽 날을 가새질러 포개고, 그 한가운데 사북으로 박혀 있다. 선생은 주자학과 천주학이라는 양날의 거대한 가위로써 세상을 재단하여 읽어내고 새로이 디자인한 것이다. 그것이 선생의 삶의 모양새이고 모든 저서들이다.

#어진 실천을 가르치다

선비는 도포 입고 풍월이나 하는 활량(閑良)이 아니고, 성인의 뜻에 따라 인민을 구제하는 사업을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선생은 말했다. 밥과 이익을 만나면 반드시 ‘의로움’을 생각하고 다가가야 한다고 아들들에게 가르쳤다.

요즘, 다산의 ‘실질적인 것을 통해 참된 삶을 추구하는 실사구시’ ‘이용후생(利用厚生)’에서 이 정부의 실용주의가 나온 것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큰 착각이다.

오늘날, 밥을 위하여 비굴해지고 추해지고 부정직해질 수도 있는 실용주의를 앞세우는 세상을 향해 선생은 외칠 터이다. “어짊과 올바름을 실천하는 예(禮)가 아닌 것은 보지 말고, 그 예가 아닌 말은 듣지 말고, 그 예가 아닌 말은 지껄거리지 말고, 그 예가 아닌 것은 행동하지 말라고.”

한승원

소설가 한승원씨.

▶『초의』(김영사, 2003)

“먼 훗날 그 돈 받을 사람이 따로 있을 것이오.” 역병으로 가족을 잃고 운흥사로 가는 초의에게 나룻배를 태워 준 아낙. 그녀는 초의가 건넨 동전 두 닢을 한사코 거절했다. 초의가 스님이면서도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과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낙의 이 말 덕분일지 모른다. 차(茶)를 통해 깨달음을 저잣거리로 향하게 했던 것도 그래서일 게다. 아낙이 준 동전 두 닢을 속세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려 했던 초의 스님의 일생을 세밀하게 그렸다.

▶『흑산도 하늘 길』(문이당, 2005)

소설은 현산 정약전이 흑산도로 향하는 작은 배 안에서 가슴을 부여안고 토악질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렇게 죽음을 거쳐 흑산도에 유배된 현산은 단절의 공포와 혼란에 온전히 잠긴다. 그 끝에 바다를 품었고 그 결과 물고기 족보 ‘현산어보’가 탄생했다. 갇힌 세계에서 끊임없이 글을 쓰고 같은 처지의 아우 다산 정약용과 서신을 나누며 깨달음과 구원을 열망했던 현산, 그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되살아 난다.

▶『추사』(열림원, 2007)

추사가 귀양살이를 한 기간은 11년. 그 긴 시간은 추사에게 싸움의 시간이었다. 정치가로서의 야망과 싸웠고 지독한 고독과 싸웠다. “살아간다는 것은, 화해 없는 영원한 싸움을 치르는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그 시간 추사는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내며 글을 읽었고 그림을 그렸으며 글씨를 썼다. ‘세한도’는 그 시절 완성됐다. 이렇게 작가는 오만한 천재 추사가 아닌 고뇌하고 애쓰는 인간 추사를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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